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는 종속적인 위치가 되었다. 중국은 자신들의 국익에 맞게 러시아를 관리하고 이용할 여지를 만들었다. 푸틴은 러시아 제국 복원을 꿈꾸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중앙아시아, 극동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16일 베이징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16일 베이징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2022년 2월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무제한의 협력”을 다짐하며 전세계에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그로부터 20일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시진핑은 푸틴으로부터 사전에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계획을 들었을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푸틴은 침공 직전까지 중국 쪽에 자세한 계획을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의 속전속결 침공 계획은 실패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단결해 저항했고,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국제적인 러시아 규탄 전선이 만들어졌다. 2022년 2월28일 유엔 총회는 러시아의 침공을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권에 대한 침범으로 규정하고 러시아가 즉각, 완전히, 무조건 철군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141개국이 찬성했고, 7개국이 반대, 32개국이 기권했다. 중국은 기권했다. 중국 내에서는 러시아를 두둔하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난하는 쪽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공공정책연구센터 부이사장인 후웨이(胡偉)는 2022년 3월 “중국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중국은 푸틴과의 관계를 가능한 서둘러 절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광고

이후 28개월을 돌아보면, 중국과 러시아는 점점 더 밀착해온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계산은 매우 복잡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몇달 뒤인 2022년 여름 무렵, 중국은 러시아와 거리를 두면서 중재자 모습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해 6월14일 중국 외교부 내의 대표적 ‘러시아통’인 러위청 부부장이 한직(광전총국 부국장)으로 좌천됐다. 그는 중-러 ‘무제한 협력’의 적극적 추진자이자 차기 외교장관 후보로도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시진핑은 외교부 내의 대표적 친러파인 러위청을 경질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향해 러시아와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광고
광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맞은 2023년 2월,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주권 존중, 냉전 사고의 포기, 전쟁 중지, 평화협상 개시 등 12개항의 내용을 발표했다. 시진핑은 2023년 3월 양회가 폐막하고 3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후 모스크바를 국빈방문해 “100년 동안 없었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가 함께 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며 푸틴과의 흔들림 없는 협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러시아 방문에서 돌아온 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해 “중국은 언제나 평화의 편에 서 있다”고 강조하며 줄타기 행보를 시작했다. 러시아의 침공 뒤 시진핑과 젤렌스키의 첫 통화였다. 이어서 5월에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에 ‘평화 사절단’을 파견했다. 리후이 유라시아 담당 특별대표가 이끄는 중국 사절단은 키이우에서 젤렌스키를 만났다.

2002년 여름부터 2023년 여름까지 중국은 왜 평화 중재자의 이미지를 강조했을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고전하고 있었고, 국제적으로도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았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틈을 벌려, 유럽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미국과의 대립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의 목을 조이고 있는 첨단기술, 무역과 투자에서 유럽과 협력하는 것이 중국에는 더욱 중요해졌다. 유럽국가들이 미국과 완전히 같은 편이 되지 않게 만들려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중요한 전략이다.

광고

하지만, 이런 중국의 ‘양면작전’은 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해왔다.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와 중국산 제품을 대규모로 러시아에 판매하고, 러시아가 유럽에 팔지 못하게 된 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으로 사들여 큰 이익을 챙겼다. 유럽 국가들에서 중국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커졌다. 유럽연합 내에서 중국과 가장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어온 독일이 2023년 7월13일 첫 대중국 전략 보고서를 발표해, 중국을 파트너이자 경쟁자, ‘체제 라이벌’로 규정한 것은 상징적인 신호였다.

러시아도 은밀하게 반발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사절단을 보내는 등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자, 러시아가 이런 상황을 뒤집으려 한 것이 친강 중국 외교부장의 기묘한 실종, 심지어 사망설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2023년 6월25일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중국 고위 관리들에게 친강 중국 외교부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이것이 친강의 숙청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중국 고위층 소식통을 인용해 “루덴코 차관이 중국을 방문한 실제 목적은 친강 전 외교부장과 로켓군 지휘부가 서방 정보기관에 이용당하고 있음을 시진핑에게 알리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는 무기를 지원해달라는 요구에 중국이 응하지 않는 것이 큰 불만이었다. 중국은 러시아의 무기에 들어갈 기계와 부품은 판매하지만, 무기는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이 설정한 ‘레드라인’인 무기를 제공하다 중국 은행과 기업들이 제재를 당하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5월16일 베이징에서 열린 비공식 회의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5월16일 베이징에서 열린 비공식 회의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2023년 여름을 계기로 중국의 태도와 전략은 다시 바뀌었다. 러시아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었다. 이 무렵부터 우크라이나의 대공세가 어려움에 빠지고 전세가 러시아에 유리해졌다. 프리고진의 반란 위기를 넘긴 푸틴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중국이 무기를 지원해주지 않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던 푸틴은 9월 극동 지역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러 만났고, 북한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두가지 큰 실책으로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외교 공간이 넓어졌다.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하고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동안 미국은 계속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침략자 러시아’를 비판해온 미국의 이중잣대에 국제사회의 실망과 비판이 높아졌다. 글로벌사우스 국가들, 특히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주장에 등을 돌렸다. 이와 함께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동맹을 무시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도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관리하는 데 더 힘을 쓸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에 대한 미국의 정책 실패, 미국 국내 정치적 분열, 트럼프와 미국 공화당, 유럽 극우들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유리한 상황에 놓이면서 시진핑 주석은 매우 유리한 고지 위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광고

시진핑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인도태평양에서는 한미일 군사협력, 오커스, 쿼드 등 동맹망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촘촘하게 만든 것은 중국에게는 불리한 요인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전세계의 우려가 커진 것도 중국에는 부담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는 종속적인 위치가 되었다. 냉전 시대에 사회주의 진영의 우두머리였던 소련과 중국은 이제 서열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러시아는 동등한 동맹이 아니며, 중국은 자신들의 국익에 맞게 러시아를 관리하고 이용할 여지를 만들었다. 푸틴은 러시아 제국 복원을 꿈꾸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러시아가 제국의 영향권으로 여겨온 중앙아시아, 160년 전 러시아가 청으로부터 빼앗은 땅인 극동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맞서는 중-러의 공동전선을 단단하게 강화했다는 점이 시진핑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지난 5월16일 푸틴과 시진핑의 정상회담 뒤 발표한 약 1만3천 자의 ‘수교 75주년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에 대한 공동성명’은 미국이 “냉전적 사고와 진영 대결 모델로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러 관계가 냉전 시대의 동맹을 초월해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군사와 경제, 대만과 우크라이나, 북한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 전방위에서 협력을 다짐했다.

지금까지 43번이나 정상회담을 하고 서로 생일을 챙기며 포옹하는 모습을 과시한 시진핑과 푸틴이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러시아가 전선에서 고전할 때, 중국이 러시아와 거리를 두었다는 것을 푸틴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행보도 중국엔 달갑지 않은 일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으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더 강화하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게 되면 중국은 북한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1950년 스탈린이 한국전쟁을 일으켜 유럽에서 미국과 동맹을 약화시키려 한 것처럼, 푸틴이 북한을 이용해 동아시아 긴장을 높여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전선을 약화시키고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시진핑도 이런 푸틴의 속내를 잘 알고 있겠지만, 중-러의 ‘반미 연대’를 흐트러뜨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북-러와 ‘악의 축’ 한통속으로 묶이는 상황은 피하기 위해 북러 밀착과 거리를 두겠지만, 중국은 러시아와 협의하면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 당분간 시진핑과 푸틴은 미국의 포위와 압박에 대한 대항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서로를 단단히 붙잡은 채 이견과 불만은 수면 아래서 관리할 것이다. 미-중 대립이 고조될수록, 시진핑과 푸틴의 헤어질 결심은 불가능하다.

[%%IMAGE3%%]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