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대외팽창을 옹호하던 극우들이 군사개입을 반대하고, 현실주의에 충실하다는 보수 주류나 진보에 근접한다는 리버럴 세력들이 비타협적인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반전과 평화를 위해 도대체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인가?
정의길 | 선임기자
반전과 평화는 진보와 리버럴 세력이 강조하는 가치다. 그런데, 요즘 서방에서는 적어도 전쟁 반대는 극우의 몫이 된 것처럼 보인다.
30일 프랑스 총선 1차투표에서 1위를 한 국민연합(RN), 독일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사민당을 제치고 2위를 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 이탈리아 집권당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 형제들’(FdI),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피데스(청년민주동맹) 등 극우 세력들이 대외정책 현안을 대하는 공통점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반대 혹은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소극적 혹은 반대이고, 특히 백인민족주의나 우파 포퓰리즘 성향 지지층이 미국의 해외 군사개입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합 지도자 마린 르펜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총리가 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프랑스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저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돈줄을 쥔 것은 총리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군 최고사령관 지위는 명예직”이라며 대통령의 국방외교 권한까지 간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서방의 보수 및 리버럴 주류들은 극우 세력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반대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체제와 한통속인 권위주의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주권과 자유를 무시하는 그들의 인식 때문이고, 이들은 러시아의 침략 행위 확대를 방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해도 문제는 서방에서 왜 이런 극우 세력들이 약진하느냐이다. 서방에서, 특히 유럽에서 극우가 주류 정당이나 집권당이 되는 배경인 동시에 이들이 내세우는 최대 의제는 이민과 난민이다. 유럽에서 현재 이민과 난민 사태의 근원은 냉전 붕괴 이후 서방의 군사개입이다. 서방은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내전 개입을 시작으로 중동에서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거쳐서 현재 가자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서방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명분으로 이 전쟁들을 일으키거나 개입했다. 명분이 옳다 해도, 결과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 서방이 집중적으로 개입한 중동은 주민에게는 지옥이나 연옥이 됐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앞장서서 개입한 리비아는 지금 어떠한가?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정부도 없고, 주민들은 항상적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는 지중해를 넘어 밀려오는 난민 행렬이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지중해에서 조난당해 죽는 난민들의 비극을 목격한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 내에서는 난민과 이민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커지고, 극우의 기반이 됐다. 극우 정당들은 정부가 국민을 돌보지 않고 해외에 나가 군사개입을 벌인다는 입장을 취하고, 그다음 수순은 해외 군사개입과 전쟁 반대가 될 수밖에 없다.
보수나 리버럴 주류들은 주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명분에 협상과 타협보다는 비타협적인 군사개입의 도그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창당 때 평화주의에 기반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탈퇴까지 주장했던 독일 녹색당은 현재 연정을 이끄는 사민당을 압박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 등 독일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추동한다. 녹색당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은 연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최고 매파이고,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자신은 지금 독일의 ‘방위산업장관’이라고 자랑했다. 독일에서 방위산업장관이란 나치 시절에 있었던 군수장관을 말한다.
반면, 르펜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나토의 끝없는 확장은 ‘비이성적’이며 “러시아에 대한 냉전은 러시아를 중국의 품에 안겨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범유럽국가회의를 촉구하고,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철수하고, 크림반도는 이제 우크라이나로 반환될 수 없기에 러시아 합병을 인정”할 것을 주장했다. 적어도 러시아와 협상과 타협을 해보자는 르펜을 마냥 비판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전쟁과 대외팽창을 옹호하던 극우들이 현실주의 노선을 취하고, 현실주의에 충실하다는 보수 주류나, 진보에 근접한다는 리버럴 세력들이 비타협적인 군사개입을 주장하는 상황은 착종된 현실이다. 전쟁 반대와 평화 추구를 위해 협상과 타협을 주장하고 추진하려는 세력은 도대체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해야만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