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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 1824년 6월28일에 태어난 프랑스의 의사. 정신과, 외과,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861년 4월에 루이 빅토르 르부르뉴라는 환자를 만났다. 환자의 별명은 ‘탕’. 정신이 멀쩡한 때에도 ‘탕’이라는 말밖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 서른부터 증상이 나타나 이십년 넘게 병원에서 살았다. 말년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어 누워 지냈다. 4월17일에 탕이 숨지자 폴 브로카는 그를 부검했다. 탕은 어쩌다가 언어를 잃었을까? 브로카는 탕의 뇌에서 답을 찾았다. 뇌 왼쪽 전두엽 일부가 달걀 하나 크기만큼 손상되어 있었다. 언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을 찾아낸 것이다. 뇌의 이 부분은 훗날 브로카의 이름을 따 ‘브로카 영역’으로 불린다.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때는 전체론과 뇌 국소화 이론이 맞선 시절. 이상건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전체론은 ‘뇌 전체가 균일하게 기능한다’고 봤고, 국소화 이론은 ‘뇌의 각 부분이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브로카는 탕을 부검하여,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실어증이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국소화 이론에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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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브로카는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다. 두개골 모양으로 성격과 능력을 판단한다는 ‘골상학’에 심취했다. 오늘날 골상학은 ‘관상’과 더불어 유사과학으로 평가된다. 브로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두개골 모양을 측정해 인종의 특징을 판단하려 했다. “백인 남성이 우월하고, 여성과 유색인종이 열등하다”는 주장을 폈다.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는 종종 같이 가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브로카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브로카 영역의 발견은 여전히 중요한 업적이지만, 오늘날에는 뇌 기능이 개별 영역에 매여 있기보다 여러 부위의 연결로 작동한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고 한다. 2016년 프랑스 보르도 대학은 신경과학 건물을 ‘브로카 센터’로 이름 지었다가 입길에 올랐다. 브로카의 인종차별이 다시 눈길을 끌었다. 브로카의 공과 과는 아직도 논란 중.

김태권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