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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이 부결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이 부결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태규 | 토요판부장

지난달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있었던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결과는 찬성 179표, 반대 111표, 무효 4표였다. 국민의힘 의원 17명이 찬성해야 재의결이 가능했는데 딱 그만큼 모자랐다.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알 순 없지만, 산술적으로는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하나도 없는 모양새였다.

이틀 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 보니까 아 정말 그, 스트레스가 풀리고 힘이 납니다. 하하하하.” 기분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이었다. 본인도 말했다. “지난 대선부터 시작해서 지방선거, 이번 총선도 어려움도 많았습니다만은, 여러분들과 선거와 또 여러가지 국정 현안에서 한 몸이 돼서 그동안 싸워왔기 때문에 여러분 이렇게 오늘 뵈니까 제가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대통령에게 국정 현안은 운용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지 ‘싸울 일’이 아니다. 야당과의 싸움에서, 특히 본인의 거부권 행사에 전폭적으로 호응해준 여당 의원들을 치하하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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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지나간 거 다 잊어버리고 우리가 한 몸이 돼서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개혁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그런 당이 되고 저도 여러분과 한 몸으로 뼈가 빠지게 뛰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대통령이 다 잊어버리자고 한 “지나간 거”는 대체 무엇일까. 50일도 지나지 않은 총선에서의 대패를 잊자는 걸까. 국민들이 회초리도 아닌 몽둥이로 매질을 했는데 이제 멍울이 빠지고 당분간 맞을 일은 없으니 모두 잊어버리자는 얘기일까. 그런 일을 당하면 자책하며 와신상담·절치부심할 거 같은 평범한 사람의 행동양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 자신을 향하는 의심스러운 정황을 모두 잊으라는 얘기일까.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방해가 자신의 격노에서 시작됐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모두 거둬달라는? 뚜렷한 맥락 없이 기괴한 말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니 이런저런 추측을 하게 된다.

108석 소수여당, 20% 지지율에도 윤 대통령이 지탱할 수 있는 건 거부권 덕이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거부권의 헌법적 한계’ 논문에서, 국회와 대통령에게 부여된 민주적 정당성은 동등하기에 ‘정책적 이견’ 정도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또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된 경우에는 빈번한 법률안거부권 행사로 국회와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킨다면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최후의 견제수단인 탄핵소추를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탄핵의 명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본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본인·가족 대상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헌법이 규정하는 평등과 공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대통령의 사적인 이해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상 용인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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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부결에 항의하던 해병대 예비역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쫓겨난 뒤 “해병대원 특검법 거부한 윤석열이 범인이다!”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문장은 이제 정치적 구호를 넘어서는 말이 됐다. ‘대통령 탄핵’도 금기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방해가 윤 대통령의 격노에서 시작됐다는 의혹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그의 특검법 거부는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그 시도가 성공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권한 문제를 지적하며 야단쳤다”는 선에서 튀지 않도록, 2023년 7월31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 참석자 수십명의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해병대 수사자료가 경찰에 이첩됐다가 회수되던 날, 세차례나 통화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입도 틀어막아야 한다.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다시 표결될 때 찬성하지 못하도록 여당 의원들의 손가락도 틀어막아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능’까지 겹쳐진다면 ‘천운’이다. 이 모든 조건과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을 때 그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앞으로 2년11개월은 윤 대통령에게도 너무나 긴 시간이 될 것이다. 무운을 빈다.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