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 전국부장
“이 전쟁은 허울뿐인 휴전 뒤에도 계속될 것이다. 발작적인 격동 속에서, 제 권리를 확신하는 위선의 탈을 쓰고, 정치적 개념들이 갑론을박 계속해서 뿌리내릴 것이다.”(‘히프노스 단장’ 7번째 시)
르네 샤르(1907~1988). 아라공과 엘뤼아르의 문학 동지였고, 알렉상드르라는 가명으로 동프랑스 산악을 누빈 퇴역 레지스탕스의 시를, 순전히 ‘반성하기 위해’ 나는 읽었다. 2주 전 선배 부원과 나눈 대화가 며칠째 머리를 맴돈 탓이다.
“서울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겄지만, 기록 남기는 차원에서라도 써야겄소. 나한테는 그게 의무요.”
내년이 환갑인 그는 한겨레 전국부의 광주 지역기자다. 부장과 현장기자의 판단이 엇갈리는 건 취재부서에선 흔한 일이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부서 연례 기획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5·18 특집이었다. 현장에선 6월 최종보고서 제출을 앞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의 조사 부실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사 계획을 올렸다.
“새 팩트가 있다면 모를까, 이번엔 사람을 앞세운 스토리텔링으로 머리를 잡고, 5·18 조사 부실 문제는 간단히 짚거나 최종보고서 나오는 시점에 펼쳐 쓰면 어떨까요?” 표현은 완곡했어도, 속으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5·18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선 이미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다 나와 있는데, 조사위 보고서가 광주 사람들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렇게까지 정색해 문제 삼을 일인가.
조사위가 잘못한 건 분명해 보였다. 시민군 무장과 관련해 조사위는 근거가 빈약한 경찰 기록을 인용해 그 시점을 ‘진상규명 불능’ 처리했다. ‘군·경 피해’를 다룬 보고서에는 계엄군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옮겨 담았다. 그들의 진술에서 시민군은 여전히 ‘무장폭도’요, 1980년 5월27일 광주 재진입은 ‘소탕작전’이었다. 그래도 서울 데스크에게 5·18 기획은 기사의 ‘단독’ 여부나 가독성이 중요했다.
서울의 나도, 전화기 저편의 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열정이 부담스러웠고, 그는 나의 습관성 거리두기가 불만이었으리라. 그 짧은 말의 공백 끝에 깨달았다. 나도 광주를 지겨워하고 있구나. 그 불편한 자각이 나를 ‘5·18 연구자 대회’가 열리는 광주로 등 떠밀었다. 23일 전남대 용봉관에서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5·18 조사위 활동에 대한 종합토론’을 지켜봤다. ‘피해자 중심’ ‘귀납적’ ‘증거기반’이라는 조사의 기본원칙이 도마에 올랐다. 불꽃 튀는 논전이었다.
“피해자 중심 원칙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귀납적으로 접근한다면서 그동안 밝혀지고 합의된 진실을 뒤흔들어 더 큰 혼란을 만들었다.”(토론자 주철희)
“조사 결과는 드러난 진실에 눈감으려는 이들에게도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귀납적·증거기반 접근이 아니면 뭐로 그들을 설득한단 말인가.”(조사1과장 최용주)
조사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가해자 쪽 ‘자위권’ 주장과 극우세력의 ‘북한군 개입설’ 등이 공론영역까지 침투하자, 이를 바로잡고 명확한 진실을 확정하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에 따라 2019년 출범했다. 조사위는 기존 결론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방식이 아닌, ‘현장 증거와 진술에 근거해 진실을 재구성하는 조사 방식’을 출범 초부터 강조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발포명령자, 시민군 무장 시점 등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결론이 나왔어도 논란이 지속되는 쟁점들의 진실을 정해진 기한에 ‘제로베이스’에서 재확정하려다 보니, 의도된 거짓말이나 검증 안 된 자의적 주장들에 취약해졌다. “보고서가 과학의 이름으로 광주를 유린한다”(토론자 박구용)는 격한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서울에 온 뒤 올해 5·18 특집기사의 댓글난을 일별했다. 과격시위가 진압군 발포를 불렀다는 가해자 쪽 주장부터, 혐오로 가득 찬 지역 비하에 악의적인 북한군 투입설까지, 작정하고 진실을 말려죽이려는 말들이 여전히 넘쳐났다. 이 ‘탈진실’의 적나라한 현실 앞에 비틀거릴 때 샤르의 단장들이 사정없이 등짝을 내리쳤다. 1944년 조국 해방이 임박한 시점에 샤르가 적어 내려간 단장의 후반부는 이러하다.
“냉소하지 마라. 회의와 체념을 멀리하고, 성벽 안 세균 같은 얼음 마귀들에 맞설 수 있게 필멸할 당신의 영혼을 준비시켜라.”(르네 샤르, 앞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