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혜정 | 논설위원

 정치권 인사들이 말하는 역대 대통령의 ‘3단계 소통 공식’이 있다. 취임 초 허니문 시기가 지나고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면, 속이 타는 대통령은 각 부처에 적극적인 ‘정책 홍보’를 주문한다. 국민이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임기 중반 국회와의 갈등이 잦아지고 국정 홍보도 내 맘 같지 않을 땐 국민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는, 이른바 ‘국민 속으로’가 본격화된다. 그러다 임기 말이 되면 ‘○○○ 정부는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며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1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4·10 총선 참패를 거치며, 1·2단계 ‘집중 과정’에 돌입한 것 같다. 지난해 보선 패배 뒤 민생과 소통을 강조하더니 이번에도 소통 강화를 핵심 대책으로 들고나왔다. 다만 소통의 주체와 강조점은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올해 초 충주시 유튜브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며 “어떤 정보를 어디로 어떻게 전해야 국민들께 확실히 전달될지 철저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고민하라”(1월9일 국무회의)는 등 각 부처의 정책 홍보에 방점을 찍었다면, 총선 참패 뒤엔 그토록 거부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고 1년9개월 만의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등 본인이 직접 등판했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서서 ‘오해’를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그 아래 깔려 있는 전제는 동일하다. 소통은 좀 문제가 있었지만, ‘국정 기조는 옳고, 나는 열심히 잘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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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기자회견은 이런 윤 대통령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단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 앞서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했다. 22분 동안 자신의 ‘치적’을 자화자찬한 것은, 국민은 왜 이런 성과를 몰라주나라는 서운함과 맞닿아 있다. “민생의 어려움이 쉬이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면서도 이를 외생 변수 탓으로 돌릴 뿐 민생 무능 논란을 촉발한 정책 실패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를 향해선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위해 정부와 여야가 함께 일하라는 게 민심”이라고 훈계했다. 지난 2년간 야당을 ‘반정부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9차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입법권을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 무작정 협력을 요구한다.

물론 사과는 없었다. 윤 대통령의 ‘남의 다리 긁는’ 듯한 인식은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더욱 명료하게 드러났다. 정국의 최대 현안이자 윤 대통령 변화의 가늠자로 평가된 김건희,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그는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규명하자는 ‘김건희 특검법’은 “(수사를) 할 만큼 해놓고 또 하자는 것은 특검의 제도 취지와 맞지 않는 정치공세”라고 규정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진행 중인 수사와 사법 절차를 좀 믿고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국방부 수사 결과를 질책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끝내 답하지 않았다. 결국 국정 기조는 옳고 사과할 일도 없으니, 그저 “더욱 소통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허망한 결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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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참패의 책임은 선거 구도를 민생이 아닌 ‘심판론 대결’로 이끈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여당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국정 쇄신은 윤 대통령의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다. 2년간 누적된 인사 파동, 민생 무능, 정당 민주주의 훼손, 협치 파괴, 언론 탄압, 김건희 여사 논란 등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에 불만을 늘어놓지만 이태원 참사, 잼버리 부실 운영,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은 오롯이 정부 탓이다. 다만 윤 대통령에게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어서, 그동안 발생한 문제는 담당 공무원과 전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면 된다.

심판당해도 심판당한 줄 모르는 윤 대통령의 남은 3년은 그래서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해야 할 여당은 이미 각자도생의 단계로 진입했고, 거대 야당은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민정수석실을 부활해 민심 청취 기능을 신설했다고 하지만, 검찰 출신 수석이 이끄는 조직이 사정기관 장악용이 아니라는 강변이 더 우습다. 이번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고 변할 생각도 없는 것이 거듭 확인됐다. 앞으로 ‘활발’해질 국민과의 소통은 지난 2년처럼 일방적인 독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임기 말 ‘59분 대통령’의 일방 소통, 상상만 해도 피로하다.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