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5일 티브이(TV)조선 메인 뉴스 프로그램 ‘뉴스 9’의 신동욱 앵커가 ‘앵커의 시선’을 진행하고 있다. 티브이조선 누리집 화면 갈무리
2021년 3월5일 티브이(TV)조선 메인 뉴스 프로그램 ‘뉴스 9’의 신동욱 앵커가 ‘앵커의 시선’을 진행하고 있다. 티브이조선 누리집 화면 갈무리

이종규|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2021년 3월5일 티브이(TV)조선 메인 뉴스 프로그램 ‘뉴스 9’의 신동욱 앵커는 ‘앵커의 시선’에서 이렇게 말했다.

“풍운아 윤석열이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나섰습니다. (중략) 이 정권 들어 더 커진, 정의와 공정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을 풀어준다면 더 좋겠습니다. 겨울 나무가 끝끝내 꽃 피는 봄 나무로 서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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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사실상 정계 진출을 선언한 다음날이다. 이 앵커 칼럼의 제목은 ‘범이 내려온다’였다. ‘정치인 윤석열’을 범에 빗댄 것이다. 신 앵커는 황지우 시인의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를 인용하며, 윤 총장을 ‘고난의 겨울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뉴스 앵커가 방송을 통해 이렇게까지 대놓고 그의 ‘새출발’을 성원했으니, ‘광야에 선’ 윤 총장으로선 감읍했을 것 같다. 검찰 수장에서 대권 주자로 직행한 ‘정치 검사’의 오명을 말끔히 씻어내 줬으니 왜 안 그렇겠나.

이게 다가 아니다. 신 앵커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인 2022년 5월10일 앵커의 시선에서도 윤 대통령을 한껏 추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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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담백했습니다. (중략) 군더더기 없이 국정 철학과 비전을 말했습니다. 타고난 성품과 지나온 내력이 그렇겠지만, 앞에 놓인 역경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절박함이 배어 있습니다.”

‘윤비어천가’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신 앵커는 이번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의원으로 변신했다. 국민의힘 텃밭으로 꼽히는 서울 서초을에 단수 공천을 받았으니, 의원 자리를 하사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이런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당신에겐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 유려했던 말들도 결국 출세를 위한 포석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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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거머쥔 언론계 출신 당선자는 신 앵커를 포함해 12명이다.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어온 일이지만, 이번 총선에선 최소한의 ‘냉각기’도 없이 정치권으로 달려간 이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 지난해 말까지 뉴스를 진행한 신 앵커는 사직하고 한달이 채 안 돼 국민의힘 ‘영입 인재’로 정치권에 안착했다. 박정훈 티브이조선 시사제작국장도 지난해 말까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사표를 낸 지 20여일 만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마지막 칼럼을 쓴 지 두달 만에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했다. 2022년 초 제이티비시(JTBC)에서 아침 뉴스를 진행하다 사표를 낸 지 일주일여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해 논란을 빚었던 이정헌 전 제이티비시 기자도 금배지를 달게 됐다.

마이크와 펜을 놓기가 무섭게 정당 점퍼를 몸에 걸쳤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태는 ‘폴리널리스트’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합성어다. ‘정치 검사’에 견줄 만한 부끄러운 호칭이다.

검사가 법복을 벗자마자 정치권으로 직행한다면 그가 했던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령으로 삼아야 할 기자가 사표를 던지자마자 정치권력의 품에 안긴다면 그가 썼던 글의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마음이 이미 콩밭에 가 있는 기자가 공정하게 기사를 썼을 것이라고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사회의 공기’여야 할 언론 활동을 정치권 진출을 위한 스펙으로 이용했다는 비판과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기자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했지만, 그들 중에는 언론인 출신임을 망각한 듯한 행보를 보인 이들이 많았다. 때때로 언론 자유를 짓밟는 ‘언론 저격수’, 언론 탄압의 첨병을 자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이름 뒤에는 늘 ‘언론 장악 기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가짜뉴스’ 타령을 하며 언론을 공격하는 이들 가운데는 언론인 출신이 여럿이다. 오죽하면 한국 언론의 적은 언론인이라는 말이 나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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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금배지를 달게 될 22대 국회 폴리널리스트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언론 윤리를 내팽개치고 정치권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을지언정 언론 탄압에 ‘부역’하는 일만큼은 앞장서지 말아 달라. 당신들이 손에 쥔 권력은 동료들의 자괴감과 맞바꾼 것임을 잊지 말라.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느낀다면, 주어진 권력을 언론 자유를 확장하는 데 쓰기 바란다. 그것이 당신들이 뿌린 구정물 탓에 불신과 조롱의 늪에 더 깊게 빠진 언론계 후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