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쓰나미가 몰아닥쳤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오사카 네이버재팬 사무실에 있었다. 진앙으로부터 먼 곳이었지만, 눈앞의 빌딩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해진은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나도 직원들이 자택에서 대기하며 회사와 연락을 주고받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메신저 서비스를 떠올린 게 바로 이때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인 1억2천만명 중 8400만명이 이용하는 국민 메신저가 된 ‘라인’의 탄생 순간을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책은 이렇게 전한다.

네이버의 일본 진출은 의외로 오래 됐다. 2001년 4월 네이버 재팬 사이트를 열어 검색 시장에 도전했지만, ‘야후!재팬’의 아성이 막강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금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라인’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11년 6월이었다. 네이버는 이미 같은 해 2월 국내에서 ‘네이버톡’이라는 메신저를 출시한 상태였는데, 1년 앞서 시장을 선점한 카카오톡에 밀려 국내 사업을 사실상 접어야 했다.

일본에선 네이버가 카카오톡을 압도했다. 만화의 나라 일본을 위한 다양한 만화 캐릭터 스티커를 비롯해 일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에 친숙한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진출했고, 전 세계 1억6천만명 이상의 활성 이용자 수를 자랑하는 글로벌 모바일 플랫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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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료 플랫폼을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드는 게 문제였다. 금융과 쇼핑을 비롯한 부가서비스는 규제가 많아 외국 자본의 한계가 뚜렷했다. 네이버가 손마사요시(손정의)의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은 이유다. 일본 최대 포털서비스인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는 간편결제서비스와 배달사업 등에서 라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해진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세계적 강자들과 겨루기 위해 손마사요시의 자본이 필요했고, 손마사요시는 모바일 플랫폼이 필요했다. 2019년 두 회사는 지분을 정확히 50%씩 나눠 에이(A)홀딩스를 설립한 뒤, 야후!재팬과 라인을 통합한 지(Z)홀딩스(지금의 ‘라인야후’)를 세웠다. 합작은 윈윈게임처럼 보였다.

둘의 허니문은 일본 정부(총무성)가 최근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면서 깨졌다. 라인을 손에 넣으려는 손마사요시의 빅픽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다. 손마사요시는 미국 야후 본사와 함께 야후!재팬을 공동설립했다가 본사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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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매각 요구의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보안 강화가 아니라 지분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는 건 전례가 없을뿐더러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폭거다. 적대국에나 할 법한 일이다. 미국도 틱톡 퇴출 시도를 법안을 통해 하는데 일본은 이른바 ‘행정지도’를 통해 날강도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로서는 일본만이 아니라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 사업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네이버만 쳐다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일본에 잘 보이려고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서 일본 편을 들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까지 묵인하는 등 친일 일변도 정책을 펼쳐 왔는데, 이것이야말로 보따리 내주고 뺨까지 맞는 격 아닌가.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