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리프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 박승연 피디
서울시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필리프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 박승연 피디

김진화 | 연쇄창업가

 유가가 치솟고 달러는 연일 강세다. 중동에서 피어나는 전운 탓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물가가 잡히지 않아 금리를 내릴 수 없다는 미국 상황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진다. 납득이 가지만 뭔가 억울하다. 내 주식만 떨어진 건 아니고 내가 내는 이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지만, 왜 폭락에 대한 분석은 항상 뒷북인 건지, 그걸 미리 알고 대비할 방법은 없었는지, 세상도 원망스럽고 자신도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와 데이터를 잘 분석하고 예측하면 곤경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의 자식들’에게는 그저 건투를 빌 뿐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명명백백한 것들 대부분이 불과 몇분 전만 해도 공중에 떠 있는 럭비공과 같았다는 것을, 지면에 닿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면 쉬 잊는다. 튀어 오른 공에만 온통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결과론만 되풀이할 뿐인 얼뜨기 현자들의 공염불에 지쳤다면, 프랑스 작가 필리프 파레노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리움미술관을 찾는 것도 좋겠다. 미술관이 현대인의 성소(sanctuary)로 자리 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파레노가 미술관 안팎을 관통해 구축한 새로운 성소는 오브제(object)가 아닌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목소리를 대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성소의 역할에 충실하다. 다만 신의 계시 또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 외부 데이터를 통해 작품들을 ‘작동’시킨다는 점이 낯설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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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주변 기후 정보를 전시장 안으로 전송하는 기계. 조형물 ‘막’(2024). 박승연 피디
리움미술관 주변 기후 정보를 전시장 안으로 전송하는 기계. 조형물 ‘막’(2024). 박승연 피디

계시를 해석하는 사제가 아니라 데이터를 명령으로 변환하는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점에서, 파레노가 창조한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최신 버전의 세상과도 닮아 있다. 서울의 남쪽을 향해 널찍하게 펼쳐진 미술관 앞마당에 우뚝하니 설치된 신작 ‘막’은 마치 화성 표면에 설치된 탐사 기구 같은 위용을 뽐낸다. 그 자리를 오래 차지하고 있던 애니시 커푸어의 조형물이 미러볼을 통해 주변 풍광을 비틀리게 반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수십개의 센서를 통해 주변의 습도, 소리, 기온 등의 데이터를 포집한다. 이 데이터가 만든 신호로 미술관 내부의 작품들을 작동하게 만든다는 게 미술관 쪽의 설명이다. 전시 전체의 핵심 고리인 이 알고리즘을 볼 수 없고 짐작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은 불편하고 당혹스럽지만, 오히려 그래서 오늘날의 세계를 더 정확히 반영하는 게 아닐까. 결정론이나 결과론이 설 자리는 없다.

‘막’이 전송한 기후 정보를 이용해 연주하는 피아노 ‘여름 없는 한 해’(2024). 박승연 피디
‘막’이 전송한 기후 정보를 이용해 연주하는 피아노 ‘여름 없는 한 해’(2024). 박승연 피디

수집된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신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게 피아노 스스로 연주하게 한다. 건반 위로는 인공 먼지가 불규칙적으로 떨어진다. 전등이 수시로 소등을 반복하고 스피커에선 외계어 같은 낯선 언어가 울린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들이 작동하는 방엔 물고기 풍선들이 여기저기 발길에 차이며 떠다니고 쉴 새 없이 소등을 반복하는 전구들과 가끔가다 움직이는 거대한 시계태엽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불규칙하게 보이는 모든 것이 ‘데이터에 의해,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한다는 믿음 혹은 인식. 세상을 움직이는 이해 불가한 역능이 ‘신의 뜻’이었던 시대를 거쳐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체한 시대에 이른 것이 인류가 거둔 성취이자 발전일까를 되묻는 시간.

배두나의 목소리로 인공지능이 창조했다는 새로운 언어 등의 홍보 포인트는 듣고 흘려도 좋을 게다. 인공지능 없이는 무엇도 어필할 수 없다는 세태의 반영 아니겠나. 차라리 전시 제목인 보이스가 복수(voices)라는 점에 주목할 일이다. 작품들을 돌아본 게 아니라 종잡을 수 없는 생각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돈 것 같다는 점에서 좋은 전시였다. 미술관을 나서니 허기가 찾아왔다. 우육면으로 배를 채웠더니 비로소 일상으로 복귀한 느낌이었다. 예술이 아닌 현실에서 ‘멋진 신세계’를 설파하는 분들이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시는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