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권 | 더밀크 대표
미국 포천지는 지난 6일 ‘일하기 좋은 미국 100대 기업’을 선정했다. 27년째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하는데 올해는 호텔 힐튼이 1위를 차지했다.
권위를 갖춘 이 리스트에서 올해 특징 중 하나는 한국에서 그동안 “직원들의 천국, 일하기 좋은 직장, 놀이터 같은 일터”로 알려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실적과 리더십에서 큰 두각을 나타낸 엔비디아가 3위로 약진한 것을 빼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후퇴는 놀라울 정도다.
특히 한국 ‘일잘러’ ‘일 잘하는 팀장’의 이상향처럼 알려지며 그로스 해킹(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폭풍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론), 오케이아르(OKR, 목표 및 성과지표를 측정하는 방법론) 등 일하는 방식의 새로운 이론을 빠르게 적용해 성장한 알파벳(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등은 상위 100위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호텔(힐튼, 메리어트, 하얏트), 항공사(델타), 유통(월마트, 웨그먼스), 물류(DHL)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 기업들도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되는데 그동안 ‘직원의 천국’ ‘수평적 리더십의 끝판왕’이라 평가받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과포장’ 돼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빅테크 기업들이 일하기 좋지 않은 기업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미국(세계 1위)은 산업과 기업의 종류가 다양하다. 한 기업이 하나의 산업(카테고리)을 대변하는 사례도 많고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그 때문에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임직원들의 기대 수준과 만족도, 고용 형태와 기업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기업문화는 기술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포장 돼 있었다. 실제 넷플릭스는 ‘자유와 책임’ ‘규칙 없음’으로 유명했지만 회사가 스트리밍 산업의 개척자가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기업문화도 변했다. 넷플릭스도 이를 인정하며 ‘자유와 책임’에 대한 원칙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지만 이런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일하는 환경도 크게 악화됐다. 특히 실리콘밸리 내 ‘해고’는 공포 수준이다. 지난해와 올해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주가는 천장을 뚫었다. 하지만 직업 안정성과 기업문화는 바닥을 찍고 있다. 실제로 고금리 고인플레이션 여파로 지난해 테크 분야 일자리가 26만2682개가 사라졌는데 이는 2022년(16만5000명)과 비교해 약 10만명 정도 늘어난 수치다. 올해는 좋아지나 싶었는데 지난 3월까지 벌써 8만명이나 해고됐다. 아마존이 2만7410명, 메타가 2만1000명, 구글이 1만2115명, 마이크로소프트가 1만2258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았던 애플도 614명을 해고했다.
지난해까지는 코로나 팬데믹 때 과하게 고용된 인력의 조정이었다면 올해는 ‘(산업과 기술의) 구조적 조정’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은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하며 기술 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해보니 ‘더이상 사람이 필요없다’는 것을 깨닫고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사라진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특징이다. 연봉도 지난해 기술 분야 평균 연봉이 14만1000달러에서 12만9000달러로 9% 감소했는데 이는 지난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더는 ‘꿈의 직장’이 아니며 바뀐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백일몽’ 같은 직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