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설.칼럼칼럼

우크라이나 난교 파티는 정말 병적일까

등록 :2022-11-20 19:30수정 :2022-11-23 15:40

1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소방대원들이 러시아의 선전 홍보물을 제거하고 있다. 지난 9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등과 함께 러시아로 병합된 헤르손은 지난 11일 러시아군 철수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수복됐다. 헤르손/AP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소방대원들이 러시아의 선전 홍보물을 제거하고 있다. 지난 9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등과 함께 러시아로 병합된 헤르손은 지난 11일 러시아군 철수로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수복됐다. 헤르손/AP 연합뉴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우크라이나에서 푸틴이 핵 공격을 개시할 경우 열리는 난교 파티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키이우 교외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이 파티에 우크라이나인 1만5천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고 알려졌다. 한 참가 신청자의 말은 신경 써 들을 만하다. “이 행사는 절망의 반대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좋은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의 거대한 낙관주의입니다.” 이 파티에 이어 오데사에서도 비슷한 파티가 기획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난교 파티를 극심한 절망의 시기에 삶을 긍정하는 기획을 만들어가는 시도로 봐야 한다. 여기에 유사 프로이트적인 분석을 적용해 트라우마적인 시기에 문명화된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현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문명적이지 않은 것은 따로 있다. 비아그라를 가지고 다니며 민간인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러시아군과 이를 조장한 러시아다. 러시아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을 ‘군사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러시아 대신 우크라이나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부끄럽지만 나의 조국 슬로베니아의 어느 학자는 우크라이나의 난교 파티에 대해 쇠퇴기에 접어든 문명에서 등장한 기이하고 병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기이하고 병적인 것은 어느 쪽인가. 병적인 차원에 도달한 러시아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공격인가, 러시아의 폭력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한 자발적이고 동의에 기반한 난교 파티인가.

지난달 18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은 러시아가 불법합병한 우크라이나 점령지들을 러시아 영토와 동일한 수준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핵우산 아래 있는 영토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미 핵 공격의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위협에 추가로 신빙성을 부여하는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에 거의 포위된) 헤르손 주민들에게 철수를 명령해,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을 차지하게 되면 여기에 핵 공격이 가능하도록 한 일이다. 푸틴은 자신이 벌인 전쟁을 “사탄숭배와 맞서 싸우는 전쟁”이라고 부르며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할 기세다.

러시아의 잔혹함도 병적이지만, 러시아에 유럽 대표단을 보내 평화 조건에 대해 협상해야 한다는 서구 ‘평화주의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을 멈추려면 러시아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유럽은 중국과의 충돌에서 미국의 작은 파트너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고자 러시아와 협정을 맺어 새로운 파워 블록을 만들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이런 어리석음은 버려야 한다. 지금 러시아는 중국보다 더 위험하다.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타협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일이야말로 러시아가 바라는 것 아닌가. 러시아와의 협상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좋은 동맹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이들과 손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러시아인, 벨라루스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와 러시아 시민단체, 벨라루스 활동가가 함께 선정되자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러시아, 벨라루스의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이런 태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어리석다. 또한 이번 전쟁의 의미도 흐린다. 이 전쟁은 푸틴의 이데올로그인 알렉산드르 두긴이나 일부 우크라이나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적 진실”과 “러시아적 진실” 간의 투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미국, 인도, 중국 등 곳곳에서 힘을 얻고 있는 국가주의적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전세계적 투쟁의 전선이다. 우크라이나가 도덕적 우위에서 놓친 게 있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키이우 외곽에 기획된 디오니소스적 방탕이 문제가 아니다.

번역 김박수연

광고

광고

광고

사설.칼럼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한동훈은 ‘강인한 사람’일까 [아침햇발] 1.

윤석열·한동훈은 ‘강인한 사람’일까 [아침햇발]

[사설] 민생 아랑곳없이 ‘윤심’ 계파정치 몰두하는 여당 2.

[사설] 민생 아랑곳없이 ‘윤심’ 계파정치 몰두하는 여당

[사설] 툭하면 고발장 던지는 대통령실, 스스로를 돌아봐야 3.

[사설] 툭하면 고발장 던지는 대통령실, 스스로를 돌아봐야

기행 일삼던 재벌가 후손, 감옥에서 쓸쓸한 최후를 4.

기행 일삼던 재벌가 후손, 감옥에서 쓸쓸한 최후를

[김명인 칼럼] 현 상태를 수락하고 싶지 않다면 5.

[김명인 칼럼] 현 상태를 수락하고 싶지 않다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