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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다채로운 코다

등록 :2022-10-05 18:36수정 :2022-10-06 11:27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의 자녀를 일컫는다. 코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코다> 포스터 갈무리.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의 자녀를 일컫는다. 코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코다> 포스터 갈무리.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스페인에 사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의 자녀를 뜻함) 레이레를 3년 만에 만났다. 우리는 20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코다국제콘퍼런스에서 처음 만났다. 콘퍼런스 참석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곳곳을 함께 다니며 순식간에 친해졌다. 방에서 밤을 지새우며 농인 부모와의 일화, 코다 정체성, 소수자로서 산다는 것에 관해 말할 때마다 농인도 아니고 청인도 아닌 나의 위치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나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 영어, 스페인 수어, 국제 수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레이레는 누군가 언어 장벽으로 대화 내용을 놓칠 때마다 능숙하게 언어를 바꿔가며 통역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배제되는 농인 부모를 위해 통역하고 중재해온 코다다운 면모였다.

레이레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수화언어학회의 영어-국제 수어 통역 일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수어통역사로 활동하는 그는 일상생활에서 통역은 물론이고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학회와 행사, 유엔(UN) 등에서 공식 통역을 한다.

레이레의 수어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생생한 표정과 상황 묘사로 국제 수어를 모르는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통역했다. 청중에 따라 어떤 난이도의 통역을 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는 말 그대로 수준급의 수어통역사였다. 그러나 레이레는 부모로부터 수어를 배워 어렸을 때부터 통역을 해온 코다가 아니다. ‘청각장애인’ 혹은 ‘농인’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한 채 자랐다.

“우리 부모님은 스스로를 농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니었어. 자신이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숨기는 사람들이었지. 청인이 우월하다고 믿고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라고 하는 오디즘(Audism)을 학습한 거야.”

그의 부모는 청각장애가 있지만 스스로를 청인이라고 여겼다. 보청기를 착용해 잔존 청력을 활용하고 상대방 입술을 읽는 구화로 소통했다. 레이레는 그런 부모의 표정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는 청인 자녀였다. 학부모 상담이 있던 날, 담임선생님은 레이레와 그의 부모님을 앉혀두고 말했다.

“학부모 상담을 수요일 4시로 잡을까요?”

정확하게 말을 알아듣지 못한 부모는 미세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이레는 통역을 하는 대신 부모에게 말했다.

“엄마, 그날 4시에 선약이 있잖아요. 5시로 하는 게 어때요?”

자신의 농(Deafness)을 부정하는 부모에게서 자라며 레이레는 다른 방식의 통역과 중재를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만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친구와 대화하고 싶어 수어를 배우게 되면서 ‘농인’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부모님이 병리적으로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로 수어로 말하고 소통하는 것은 그의 일상이 됐지만, 코다 정체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고 통역 돌봄을 해온 ‘일반적인’ 코다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은 달랐기 때문이다. 한동안 자신을 코다라고 이르길 꺼렸다. 그러나 더 많은 코다를 만나면서 코다의 경험은 단일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가 수어를 사용하지 않아 수어를 하지 못하는 코다도, 청인 조부모나 친척에게서 양육돼 수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코다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코다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됐다.

레이레는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자란 코다이면서 동시에 레즈비언, 비건이기도 하다. 복잡한 정체성과 소수자성을 가지는 것이 힘들 때가 있는지 물었다. 레이레는 단번에 아니라고 했다.

“이게 바로 나야. 사람들은 늘 소수자로서 어려운 점을 묻는데 나는 내가 코다여서 값진 경험을 한다고 생각해. 지구 반대편에 사는 너를 만나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공감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코다이기 때문이잖아.”

코다들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돌아본다. 그들의 경험을 경유하여 나의 시각을 확장한다. 코다라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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