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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칼럼]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서…’

등록 :2022-08-04 19:27수정 :2022-08-05 02:35

우리는 차별을 없애자고 한다. 가능하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억압과 공포보다는 자유와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아주 근원적인 욕망의 사회적 병리현상, 성범죄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분명해지지 않고는 우리가 누릴 자유와 평화는 말장난이나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터.

이경자 | 소설가

‘만진 부분의 감촉이 떠올라 힘들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서 잠도 안 오고 서럽다.’ 친구에게 이런 문자를 남긴 그. 뉴스 보도에서는 ㄴ씨로 불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모델을 꿈꾸며 3년 전 가족을 떠나 홀로 상경했다. 간간이 들어오는 모델 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저녁 시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날, 단골손님인 50대 남성이 ㄴ씨에게 강제추행. 가해자 ㄱ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ㄱ씨가 찾아와 ㄴ씨에게 억울하다고…. ㄴ씨는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했고 발소리만 들려도 극도로 긴장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ㄱ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가 폐회로 티브이 영상을 보여주자 가해 사실 인정. 하지만 ㄴ씨는 ‘엄마 아빠에게 너무 죄송하다. 막막하고 살아갈 의욕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젠 이 세상에 없는 ㄴ씨의 말처럼 일흔다섯살이 된 할머니인 나도 계속 생각나는 게 있다. ‘왜?’ 혼잣말로 묻는다.

내가 사춘기를 지나고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청운의 꿈을 펼 날을 꿈꾸며 남루하게 살던 청춘의 나이일 때, 버스와 지하철은 대개 콩나물시루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쩌다 의자에 앉을 때도 있고 설 때도 있었다. 반세기도 더 지난 옛날. 그맘땐 언론사 기자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터. 콩나물시루라는 표현을 쓰며 대중교통의 문제점으로 교통난 해소책 등등을 다뤘지만 나의 ‘왜?’에 대해선 무관심.

그 무관심의 여운이 여태 지워지지 않는다.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앉거나 섰을 때, 옆구리와 가슴께에 이상한 감각이 징그럽고 참혹하고 열패감으로 각인된다. 이건 안 된다는 표시로 몸을 웅크리거나 팔을 빈틈없이 착 붙여도 보지만 그 징그러운 감각을 만드는 대상은 더 집요하다. 곁눈의 시야에 감지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소위 ‘신사 아저씨’. 대개 그랬다. 내가 아무리 싫은 시늉을 해도 그 찐득하게 붙은 남자의 ‘추행’은 불가사리 같았다. 창피한 건 나.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그맘때의 ‘여성’. 만원버스나 지하철이 아니라면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추행은 따라붙는다. 허벅지, 엉덩이, 허리와 팔.

드디어 몸과 마음이 수세미같이 된 뒤, 내릴 정거장이 아닌데도 그 손길을 피해 내린 적도 있다. 그 남자가 따라오는 게 분명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얼굴도 모르는 그 가해자의 손길을 피해 도망쳤다.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아무도 이런 행태를 범죄라고 여기지 않던 때. 그러나 그 ‘만진 부분의 감촉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세월이 꽤 흘러서 이런 경험을 남자들에게 물어봤다. 이럴 경우 남자들은 여자인 내가 자신의 추행을 즐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지하철에서 황망히 내릴 때 그림자처럼 따라온 건 내가 자신을 유혹한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정말 알고 싶었다. 남자 일반의 생각을. “가만히 있으니까 좋아하는 줄 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새 천년, 2000년대로 접어들었다. 세상이 확 바뀐 것 같다. 여성으로부터 역차별을 받는다고 말하는 남성들의 의견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제도적으로 바뀐 것도 많다. 아들 딸 차별하지 않는 상속권. 여성에 대한 취업차별 해소나 동일임금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얻으려 애쓰는 상황이다.

그런데 엔(N)번방 사건이 터졌다.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 엔번방과 박사방에서 자행된 성 착취 사건을 말한다(시사상식사전). 이 뉴스를 보던 순간의 두려움. 경제개발 시대, 산업사회로 진행하던 1960년대 서울역의 양동이란 매매춘 지역은 가난한 딸들을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몸을 약탈하면서 의지박약 상태로 공포감을 극대화시킨 뒤 몸을 상품화해서 이익을 갈취하는 범죄 공간이었다. 양동과 엔번방의 차이는 여성의 몸, 그 인격에 대한 범죄의 진화다. 엔번방이니 박사방이니 하는 기사를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그 잔혹함 때문에.

교내 여자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교장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는 기사가 떴다. 필리핀으로 도피했던 국내 최대 규모의 성매매 알선 사이트 ‘밤의 전쟁’ 운영자가 강제 송환됐다는 기사도 함께. 인천의 한 대학교에선 성폭행을 당한 여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생겼다. 2022년 7월의 일들이다.

일흔다섯살 난 할머니는 공중화장실에 가면 불안신경증이 도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고 경제개발독재시대에 일어났던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재심이 간첩조작 누명을 벗겨주는 밝은 세상. 그런데 할머니가 공중화장실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을 넘어 불안해한다. 어디 나사못을 조인 곳에 몰래카메라가 박힌 건 아닐까?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가 된 것 같은데 수십년 전 만원버스에서 팔꿈치나 허벅지로 조여오던 멀쩡한 아저씨들로부터의 ‘도망자’에서, 화장실 몰래카메라로부터의 신경증적 ‘단속’ 사이에 ‘바뀐 것’은 무엇일까. 학교와 직장과 공공장소에서 몰래카메라로 여성의 성징을 찍는 교사, 상사, 동료들. 그렇게 찍은 사진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남성이 화장실에 가서 당신의 성징이 몰래카메라에 찍히고 그것이 돈으로 팔려나간다고 상상해보길 바란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아니 전 지구적 판매망에 노출된다고 상상해보길 바란다.

남자와 여자의 생각의 차이. 사회화의 차이가 얼마나 크고 깊고 까마득한 것인가. 놀랍고 섬뜩하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말하며 ‘여혐’을 들었다. 여성을 혐오하는 것. 무엇이, 왜, 여성을 혐오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 사는 세상에 권력이 어느 한쪽에 집중되고 그렇게 쏠린 권력이 폭력성을 띨 때, 그리고 사람 사이에 차별을 만들고 그 차별이 제도와 관행과 관습과 미덕으로 이행하는 동안 사람 사이에 누구는 가해자가 되고 누구는 피해자가 되었을 터.

우리는 차별을 없애자고 한다. 가능하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억압과 공포보다는 자유와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때 2명의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한명은 여전히 범죄자로 재판정을 오고 가던 시대가 코앞이었다. 하지만 정말, 아주 근원적인 욕망의 사회적 병리현상, 성범죄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분명해지지 않고는 우리가 누릴 자유와 평화는 말장난이나 모래성에 지나지 않을 터.

이젠 세상에 없는 ㄴ씨. 그리고 그런 이유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여성들의 분노와 절망 슬픔에 기대어 이 글을 썼다. 명복을 빌 자격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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