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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등록 :2022-08-04 19:24수정 :2022-08-05 02:36

2015년 12월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각자 발언하는 형식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2015년 12월28일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각자 발언하는 형식으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특파원

여야 국회의원 11명으로 구성된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해 4일 일본 쪽 파트너인 일한의원연맹 의원들을 만났다. 윤덕민 신임 주일본 한국대사는 부임 17일 만인 2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을 예방했다. 지난달 18~20일엔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 하야시 외무상 등을 만나 한-일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꽉 막혀 있던 한-일 대화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물꼬를 튼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활발한 움직임에 견줘, 실제 논의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 문제는 한-일 관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한-일 관계 최대 쟁점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따른 ‘현금화’는 한국에서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지만,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피해자들을 대변해온 소송지원단도 더 이상 협의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두 현안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일부 양심적인 학자나 시민단체를 제외하고는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한국이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큰 영향을 줬다.

일본에서 ‘위안부’ 얘기가 나오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비판이다. 기시다 총리부터 “최소한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논의를 해도 의미가 없다”며 여러 차례 불쾌감을 표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합의 때 일본 외무상으로 윤병세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과 함께 서울에서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어려울 것이라는 엄포도 일본 안에서 나온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 합의는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과 충분히 조율하지 않은 채 일본과 합의를 하면서 ‘합의안’은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합의안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무엇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 답을 두고 대체로 화해·치유재단 문제가 꼽힌다. 일본 정부가 10억엔(당시 환율로 108억원)을 출연해 2016년 7월 출범한 재단은 2018년 11월 해산됐다.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노력과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하는 것도 한국이 이행해야 할 약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합의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일본이 약속한 내용 중 이런 대목도 눈에 띈다.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해 모든 전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한다.”

올해부터 모든 일본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역사 교과서 12종 중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조금이라도 서술한 곳은 단 한곳뿐이다. 내년부터 일본 고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 가해자를 명확히 한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사라진다.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역사 교육을 통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지키지 않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위안부’ 합의에서 약속한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와도 거리가 먼 조치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향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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