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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홍은전 칼럼] 동물의 눈

등록 :2022-07-31 18:20수정 :2022-08-01 02:36

축산업을 통과해 나온 동물들의 사체가 바로 고기다. 어떤 렌즈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음식’이고 동물의 눈으로 보면 ‘폭력’이다. 햄버거 패티처럼 ‘사소한 취향’이 되기도 하고 ‘역사상 일어난 모든 전쟁이 만들어낸 비극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배달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배우자가 10년 전 미국 맥도널드 노동조합에 방문했을 때였다. 수백명이 모여 파업투쟁을 하는 날이었는데 신기한 점이 있었다. 끼니마다 주최 쪽에서 채식 메뉴가 준비돼 있음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파업 같은 엄중한 사안 앞에서 ‘점심 샌드위치에 고기를 넣을지 말지’처럼 사소한 문제를 묻고 따지는 일이 퍽 인상적이긴 했어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배우자는 말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몇년 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그는 급작스럽게 동물권의 세계에 눈을 떴고 거부할 도리 없이 탈육식의 대열에 합류했다. 대부분이 중년 남성인 조합원들로부터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그러면 단백질은 어떻게 보충해?”였다.

그 궁금증은 한때 그의 것이기도 했으므로 배우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성실하게 대답했다. 어떤 날은 균형 잡힌 채식이 임신, 수유기를 포함해 삶의 모든 단계에서 안전하다고 발표한 미국영양학협회의 권위를 빌렸고 어떤 날은 유명 운동선수들이 나와 신체 능력 강화에는 육식보다 채식이 더 효과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다큐 <더 게임 체인저스>를 권했다. 하지만 나날이 훌륭해지는 그의 대답과 달리 동료들의 질문은 놀라울 만큼 똑같았고 거의 기계적이었다. 최선을 다해 대답하던 어느 날 그는 불현듯 이 질문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좋아한다는 그 ‘고래 퀴즈’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퀴즈는 이렇다. “몸무게가 22t인 향고래가 500㎏에 달하는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t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 질문을 받는 순간 눈알을 굴리며 계산기를 돌리기 시작한 사람들의 머릿속이 엉키기 시작할 즈음 정답이 발표된다.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래 퀴즈의 교훈은 이것이다. “초점을 잘못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다. 핵심을 보아야 한다.” 배우자는 말했다. “문제는 단백질 과잉이지, 단백질 부족이 아니었다고.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는 더 중요한 핵심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고기=단백질’, 그러니까 ‘고기=음식’이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절대 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축산업이라는 폭력이다. 그 잔혹함은 ‘고기=음식’이 아니라 ‘고기=동물’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만 볼 수 있다. 축산업을 통과해 나온 동물들의 사체가 바로 고기다. 어떤 렌즈를 통해 보느냐에 따라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음식’이고 동물의 눈으로 보면 ‘폭력’이다. 햄버거 패티처럼 ‘사소한 취향’이 되기도 하고 ‘역사상 일어난 모든 전쟁이 만들어낸 비극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폭력’이 되기도 한다.

도시공학 연구자 이현우가 쓴 동물권 에세이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를 읽었다. 삶을 바꾸는 앎의 순간이 있다. 그것을 알기 전의 나와 알고 난 뒤의 내가 결코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앎의 순간 말이다. 이현우에게 그것은 6년간 함께 살았던 개 ‘똘이’가 아버지에 의해 개장수에게 넘겨진 뒤 ‘해체’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때였다. 똘이에게 물린 아버지가 ‘사람을 한번 문 개는 더 이상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저자의 눈에 장착되어 있던 어떤 렌즈가 탁, 하고 깨져버렸다. 균열이 간 렌즈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더 이상 어제의 세상이 아니다. 온통 도살장이다. 균열이 간 그 렌즈는 바로 똘이의 눈, 철창 속에 갇힌 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물의 눈이다.

똘이의 죽음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낀 저자는 똘이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긴 여정을 떠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식을 시작한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질문하며 나아간다. 우리는 왜 한편에선 동물을 보호하고 한편에선 동물을 학살하는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입는가. 우리는 왜 ‘개를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 돼지, 닭을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과하다’고 반응하는가. 치열하게 묻고 읽고 쓰던 그의 발걸음은 도살장과 수산시장, 생크추어리(동물들의 안식처) 등으로 이어져 마침내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는 동물해방운동에 가닿는다.

단백질 보충이라는 사소한 이유로 피 흘리며 도살되는 동물들이 급증하는 계절이다. 부디 이 엄중함을 알아보는 이들도 조금은 늘어나길 간절하게 바란다.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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