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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ESG에 부는 역풍 / 이봉현

등록 :2022-06-21 17:32수정 :2022-06-22 02:50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에도 이에스지 ‘열풍’이 불어 이에스지 위원회를 꾸리고 경영의 지표로 삼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 누리집 갈무리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에도 이에스지 ‘열풍’이 불어 이에스지 위원회를 꾸리고 경영의 지표로 삼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 누리집 갈무리

이봉현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이에스지(ESG)를 “사기”라고 했을 때 괴짜가 또 좌충우돌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기업의 주주 총회에 올라오는 기후변화 안건이 “경영진을 지나치게 구속”한다며 다음 주총에서 관련 안건 대부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것은 간단치 않다.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누군가? 2020년 초 기업에 보낸 서한에서 “화석연료 기업에는 투자를 중단하고, 이에스지를 투자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혀 세계적인 이에스지 바람을 몰고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입장을 바꾸었다. 둘 다 지난달 일이다.

올 초만 해도 모든 길은 이에스지로 통하는 듯 보였다.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이에스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시대에 기업이 사회책임과 재무적 성과를 통합적으로 성취하는 경영의 새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 주주만이 아니라 임직원, 공급자, 지역사회를 두루 살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길이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은 예외 없이 이에스지를 경영 원리로 도입하겠다고 나섰고, 이에스지 펀드도 매년 급증해 지난해에는 2.7조 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지난 2년간은 ‘열풍’이라 할 만큼 이에스지 바람이 불었다. 주요 대기업마다 이에스지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경영선포식 같은 것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역류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선 규범으로서 이에스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무엇이 이에스지인지 여전히 모호하고 과연 이를 통해 좋은 일과 재무적 성과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지 확신이 부족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이 다 이에스지에 해당했고, 평가 기준도 들쑥날쑥하였다. 미국 엠아이티 대학과 스위스 쥐리희 대학이 유명 이에스지 평가기관 6곳의 데이터를 비교해 보니 서로의 상관관계가 0.38~0.71에 불과했다. 같은 기업을 두고도 이에스지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본다는 얘기다. 기업 신용평가회사들의 데이터 상관관계가 0.9가 넘는 데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발끈한 것도 저탄소 전략 부족 등을 이유로 테슬라가 에스앤피(S&P)500 이에스지 지수에서 퇴출당하자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왜 10위 이내 상위권에 있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이에스지 경영과 투자에 대한 견고한 틀이 없다 보니 홍보를 노려 평가기관이 들여다보는 체크리스트에 집중하거나, 무늬만 이에스지인 ‘이에스지 워싱’이 성행했다. 화석 연료 기업이 이에스지 순위 상위권에 오르고, 이에스지나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펀드가 여전히 화석연료 기업 주식을 담고 있거나 탄소배출이 적고 수익성은 높은 정보기술기업에 몰입하는 ‘게으른 투자’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이 이에스지를 바라보는 눈길도 매서워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의 도이치그룹 자산운용사(DWS)에 대한 조사는 지난달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이에스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품을 이에스지 펀드에 대거 편입했다는 내부 고발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자동차업계의 이른바 ‘디젤 게이트’와 같은 펀드 불완전 판매 게이트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다음은 생존본능의 발동이다. 공급망 병목과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는 석탄과 석유로 신속히 회귀하고 있다. 안보 불안감도 높아져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도 커졌다. 무엇보다 치솟는 기름값과 무기 구매 폭주로 화석연료 기업과 방산업체의 수익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는 이에스지 펀드는 수익률이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벌써 이에스지 펀드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이러자 일부는 방위산업을 주권국가의 안녕을 보장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산업이라 주장하는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규정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방위산업 매출 비중이 5%를 넘는 기업과의 거래 중단이 포함된 지속가능 경영 정책을 발표한 스웨덴 에스이비(SEB)은행은 전쟁이 벌어지자 4월부터 입장을 바꿔 자사의 일부 펀드가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했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한국 비대면산업 박람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에스지 경영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한국 비대면산업 박람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에스지 경영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층 고약한 것은 이에스지가 ‘문화전쟁’의 과녁이 된 일이다. 공화당 등 보수우익은 미국 기업을 좌경화하는 원흉으로 이에스지를 찍고 11월 중간 선거를 계기로 손을 보려 나섰다. 이들은 이에스지 정신에 따라 환경, 젠더, 국제분쟁 등에 대해 진보 정치적 입장을 내는 경영자나 기업의 행태를 ‘워크 자본주의’라 딱지 붙였다. ‘깨어있는’ 이란 뜻인 워크(woke)를 비틀어 진보 엘리트의 ‘착한 척’을 비꼬는 말로 만든 것이다. 트럼프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는 “워크 좌파가 급진적 환경, 사회의제를 기업에 강요해 기업의 나라 미국을 정복하려 한다”고 비난한 뒤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국에서 이에스지 원칙의 사용을 끝내도록 만들자”고 촉구했다. 석유 기업의 고향 텍사스는 지난해 주 정부의 투자펀드가 화석연료를 보이콧하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는 블랙록의 기후변화 정책을 문제 삼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와의 거래를 끊겠다고 1월에 발표했다.

‘안티 워크’ 공세에 걸려 곤욕을 겪고 있는 기업이 월트디즈니이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는 밥 체이펙 최고경영자가 공화당 소속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주도한 ‘부모의 교육권법’(Don’t Say Gay)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 법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같은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이어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체이펙도 논란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으나, 회사 내 젊은 직원의 강한 항의를 받고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드샌티스 주지사와 주의회가 발끈해서 디즈니 월드가 있는 지역의 감세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회사를 여러모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이에스지를 둘러싼 조류가 바뀌는 듯하자 이달 초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스지라는 말의 유용성이 끝나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간 지속가능성을 줄기로 한 여러 경영 패러다임이 부침했다. 한때 유행한 사회책임경영(CSR), 공유가치창출(CSV)처럼 이에스지란 말이 새로운 사회의 꿈을 주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은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식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스지가 태동하게 된 문제의식이나 해결 의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인류의 모래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주주의 권익만 중시해온 경영이 불러온 불평등은 포퓰리즘 극단정치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나 인권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젊은 세대가 소비자나 노동자로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전에 없이 강력해졌다. 이번 위기는 이에스지 경영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니레버, 파타고니아, 킹아서베이킹컴퍼니 처럼 지속가능성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은 기업이 많이 있다. 이런 기업의 성공을 모델 삼아 이에스지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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