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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어느 중학생의 죽음

등록 :2022-04-17 18:06수정 :2022-04-18 17:22

[기고] 이원석 | 제주지검장

지난여름, 제주 단독주택에서 청테이프로 온몸이 묶인 중학생 시신이 발견됐다. 신고자는 동거남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던 피해자의 어머니였다. 동거남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경찰은 동거남과 그 후배가 담을 넘어 침입하는 골목길 시시티브이(CCTV) 영상을 확보하고 두 사람을 붙들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체 검시를 막 다녀온 살인사건 전담 검사로부터 경찰의 수사 경과를 보고받고 경찰이 신청한 부검영장과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도록 했다. 동거남이 결별을 요구한 여성과 그의 중학생 아들에게 폭력을 넘어 살인을 저지른 것이 명백해 보였고, 이 사건은 내 머리에서 잊혔다.

하지만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뒤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됐다. 공범 두 사람은 경찰에서부터 줄곧 서로 상대방이 혼자서 허리띠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고 책임을 미루며 부인해온 것이다. 밀실살인 현장에는 시시티브이가 있을 리 없고, 목격자도 없으며,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경찰에서 허리띠를 감식했지만 피해자 디엔에이(DNA)만 검출됐다. 누가 살인을 주도했고, 누가 가담했는지 혹은 지켜만 본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경찰에서 넘어왔다. 이대로라면 증거법상 두 사람에게 살인죄의 책임을 묻기 곤란하다. 살인 현장에 두 사람이 있었지만 정작 누가 죽였는지 미궁에 빠진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판박이다.

곧 현실이 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상상해보자. 경찰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어 휴지 조각이 된다(법이 바뀌어 올해부터 검찰 조서도 휴지 조각이 됐다). 어차피 공범들끼리 서로 미루고 있으니, 조서에 별 의미도 없다.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다 해도 이미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넘긴 경찰에서 신선한 증거를 찾을 거라 기대하기 어렵고, 기존 선입견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하물며 아예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조차 못 하게 하라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행히 아직은 검사에게 수사권이 남아 있다. 검사는 두 사람을 상대로 영상녹화 조사를 거듭했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쪽의 진술이 차츰 흔들렸다. 경찰에서 이미 해봤지만 피해자 디엔에이만 검출됐던 허리띠의 재감식을 대검찰청 포렌식센터에 한번 더 의뢰해보기로 했다. 공범 두 사람의 디엔에이가 허리띠 양끝과 가운데에서 나왔다. 거짓진술이 물증과 과학수사로 무너진 것이다. 거짓말탐지기 검사와 함께 진술 하나하나를 짚어 행동·심리분석까지 마치자, 두 사람 모두 살인에 직접 가담한 사실이 밝혀졌다. 초동에 사체를 검시했던 검사가 선입견을 배제하고 원점에서 재수사했고 모든 재판에 일관되게 관여했다. 1심에서 징역 30년과 27년을 받아냈다. 그러나 형량이 낮다고 생각한 우리는 항소했고, 며칠 전 두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래서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가 한번 더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그리고 사람으로 구성된 수사기관은 진실을 놓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실수를 시스템으로 막기 위해 다른 수사기관을 하나 더 두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2중, 3중으로 보호하게 만든 것이다. 대형 참사에 닥칠 때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대 이전의 사법체계처럼 검찰과 법원을 합쳐 하나만 두면 될 것을 따로따로 설치한 이유도, 그리고 법원이 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2심, 3심을 하는지도 이참에 생각해봤으면 한다.

기자가 기사를 쓰려면 취재를 해야 한다. 의사가 수술을 하려면 진찰을 해야 한다. 법관이 판결을 내리려면 증거 조사를 해야 한다. 의원이 법안을 의결하려면 심의를 해야 한다. 변호사가 변론을 하려면 의뢰인을 만나봐야 한다. 검사도 기소를 결정하려면 먼저 수사를 통해 팩트를 체크해야 한다는 자명한 이치가 흔들리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의심이 남아 있는데도 직접 보고, 듣고, 수사해보지 않고서 남이 만든 서류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기소를 결정할 만큼, 그럴 만큼 나는 명민하지 못하다. 그래서, ‘검수완박’이 되면 검사 직분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영 자신이 서지 않는다.

끝으로, 안타깝게 희생된 피해자의 영면을 빌며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

현직 검사장인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지검장의 글과 함께 검찰 수사권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이 연이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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