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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87년 스토리’의 종말

등록 :2022-03-16 19:10수정 :2022-03-17 02:31

[기고] 함돈균 | 문학평론가

“어떻게 저런 후보를 찍을 수 있나”라는 지인들의 한숨을 대선 이후 많이 들었다. 그러나 2022년의 한국 정치를 ‘어떻게’라는 부사어가 동원될 만큼의 절대악과의 전쟁터로 보는 관점은 과연 타당한가. ‘관점’이야 자기 나름의 것이겠지만, 문제는 이제 이런 관점으로 스토리를 쓰는 방법은 현실정치에서 통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는 사실이다.

‘인문적’ 관점에서 이번 대선 결과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 구도로 인간과 삶을 이해하게끔 강요하는 이분법 세계관의 몰락을 보여준다. 48.56% 대 47.83%의 절묘한 수치는 단지 대립의 수치가 아니라 ‘균형’의 수치이기도 하다. 악마와 싸우는 숭고한 영웅 서사가 흥행할 가능성은 이제 별로 없다. 특히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내세웠던 내로남불 민주당 정부 5년을 거치며 이런 스토리의 설득력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4기 민주정부 수립’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민주당 지도부가 선거 후 총사퇴하면서, ‘5년 후로 4기 민주정부 수립을 미루게 되었다’(송영길 대표)고 한 말은 여전히 민주당이 인지착오적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민주정부’라는 표현은 자기들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며 상대 당과 지지세력은 ‘반민주정부’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48.56%가 반민주정부 수립에 동의했다는 뜻인가. 5년 내내 팬덤정치에 취해 있던 민주당은 메시지의 수신자를 국민의힘으로 보고 있을 뿐, 그들 뒤에 있는 국민을 무시해왔다.

무대에서 한 배역을 오래 한 배우들은 그 이야기와 캐릭터를 실제라고 믿으며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 스토리’에서 짭짤한 흥행을 보고 파생된 이익을 독점해온 민주당은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상징기호 뒤에 숨어 배우의 무능력을 은폐하면서, 관객들에게 이 이야기가 실제라고 윽박지르는 일을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했다. 길게 보면 87년 이후 30년 이상 반복된 닳고 닳은 스토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 신인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이가 현 정부에서 녹을 먹다가 겨우 몇달 만에, 불과 5년 만에 탄핵된 정당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은 트럼프적인 의미에서 ‘반정치’다. 정당정치의 죽음, 정치 외부의 침입이라는 현상에서다. 보수당인 국민의힘은 사실상 자기 당 내부에서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정치를 희화화시킨 것은 윤석열 후보나 안철수 후보가 아니라, 이들의 희극을 성공하게 만든 민주당, 나아가 한국 정당정치다.

이제 지루한 이야기의 종식을 위해 세계관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47.83%의 시민들이 대통령 당선자를 민주당이 조국 사태 이후 써왔던 ‘악마 이야기’ 속 캐릭터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정치에서 선거제도는 상호인정에 기초한 일종의 게임이다. 지지하지 않았던 당파와 정부에 승복하고 협조하는 것도 민주주의 게임의 중요한 일부이다. 2017년 대선이 박정희 신화의 종결이었다면, 2022년 대선은 586 운동권 신화의 종결이다. 정치에서도 윤리는 중요하지만, 현대정치를 도덕주의 스토리에 끼워 맞춰 각색하는 일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인간세상에 애초 가능하지도 않은 절대도덕성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신정정치’ 시대는 끝났다. 그러한 세계관의 유포를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착각해온 진영논리적 이야기꾼들, 이데올로그들도 더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일베의 혐오 조장만큼이나 ‘87년 스토리’에 바탕을 둔 당파적 지식인들의 분노 조장과 대중 선동도 위험하다. 적어도 젊은 세대에게 이런 선동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준석 대표의 혐오 조장에도 저항하겠지만, 꼰대정치 신화도 비웃을 것이다.

5년마다 치르는 대선을 절대부정과 절대긍정이 대결하는 악마 이야기, 영웅 이야기로 보는 시대는 끝났다. 이런 스토리에서 다원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겠는가. 이번 대선은 선거에 의해 사실상 시민 내전 구도를 작동시켜온 ‘87년 스토리’의 종결이 되어야 한다. 선거인단 수는 586세대보다 적지만, 정권의 향배에는 캐스팅보트를 쥔 젊은 세대에 의해 다원주의적 정치 환경이 형성되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나마 나를 안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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