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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어떤 날] 2021년이 선물해준 소중한 시간

등록 :2021-12-27 04:59수정 :2021-12-27 09:22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ㅣ 가수

크리스마스 언저리까지 우리 집은 엄마의 기운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며 조심스러웠다. 3차 백신 접종을 모시고 가서 같이 맞았는데 나는 팔뚝이 좀 무지근하고 잠이 와서 잘 쉬었고, 엄마는 어지럽다고 토하며 기운이 빠져서 한걸음 내딛기도 힘겨워하시다가 아예 누워서 운신을 못하셨다. 게다가 이럴 때는 없던 일이 몰리면서 이른 아침에 나와 밤중에야 돌아오니까 잠실 사는 막내가 일산까지 오가며 곁에서 식사수발을 들었다. 희경과 나는 국이 식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국이 뜨거워서 식기를 기다릴 정도의 거리에 사니까 서로 비켜 가며 잘 맞출 수도 있건만 둘 다 새벽부터 밤까지의 일정이면 남편이 당번이 된다. 고령자 셋이 사는 우리 집은 심지어 먼저 짝이 떠난 강아지 미미까지 15살이니 제대로 고령 가구에 해당된다. 새해 엄마는 93살, 남편 74살, 난 71살, 미미는 16살(사람 나이 90살 격)이다.

오늘 저녁 기운 차리신 엄마가 “얘! 올해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니? 연말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른 채 지나네” 하셔서 “나도 그래요. 시간 감각이 둔해졌나봐” 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감상이 아무렇지 않다. 사람을 만나야 웃고 떠들며 얘기도 하고 뭔가가 따스하게 불씨처럼 살아날 텐데 금년을 돌아보면 취미 없던 티브이(TV), 휴대전화에 전에 없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일이 같은 동료들도 워낙에 열린 직업이다 보니까, 같이 모일 때도 집에서 모인다. 사실 다 알려진 얼굴에다 목소리나 조신한가? 큰소리로 수다 떨기엔 집이 최고다. 그러니까 연예인들은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 집에서 논다. 바깥은 편치 않다. 주변의 눈길도 부담이고…. 본래 식구들 다 나간 후 집하고 둘이서 있는 걸 좋아한다. 집콕을 좋아하는 집순이다. 게다가 웬만하면 내 식대로 만들어 먹는 즐거움을 아니까 외식도 시큰둥하다. 그러니 금년 한해 더더욱 동굴로 숨어드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작은 만남, 젊은이들과의 시간이 내겐 기쁨이었다. 모든 것이 강화되기 전, 1년에 한번은 반갑게 만나는 후배 두 사람―51살, 54살 미혼의 일벌레들! 그중 한 사람이 우리 집에 그렇게 놀러 오고 싶다 해서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절 작가였던 54살짜리가 허락을 구하고 데려왔었다.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만나고 나서 조금 수줍음이 가시더니 자기는 내가 자기의 새엄마였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대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바람 중에 지금까지도 압권인 얘기다. 오십 넘기고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때마다 둘이 만나서 “야 이것들아, 내 뒤에는 양희은이 있어. 이거 왜 이래?” 그러면서 씩씩하게 견딘다고 한다. 일하고 상관없이 만나면 늘 기분이 좋은 친구들이다.

금년에 <여성시대> 기획 중에 월요일의 ‘힘내고 가게’ 코너가 있었다. 자기가 아끼는 가게를 소개하며 응원하고 어떻게 맛있고 주인장이 어찌어찌 친절하니 찾아와 돈쭐을 내달라고 소상공인 힘내게끔 라디오 광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느 날 자기네는 파리 유학생활 중에 만나 결혼을 하고 12년 살다가 일본 가서 빵 공부를 더 하고 귀국한 다음 얼마 전에 연남동에 가게를 냈다고 직접 소개한 부부가 있었다. 가까우니까 나보다 먼저 동료인 서경석씨가 찾아갔는데 간판도 작고 찾기 힘든데 알려지지 않아 걱정이라더니, 무슨 빵집이 낮 12시에 열어 7시에 닫느냐 물으니 자기네는 저녁이 있는 삶을 지키고 싶다고 대답하더란다. 아직 고생을 덜했다 할지 몰라도 나는 외려 그 젊은 부부의 고집스러운 철학을 지켜주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디까지 가려는가? 이것저것 희생하고 나머지는 접고 포기하고 그래야만 그 무엇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과연 정말 그곳에 갈 수는 있을까?

아내의 말로는 신선한 빵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구워야 12시에 빵이 완성이 되니 문은 12시에 열지만 사실은 새벽부터 일한다는 말, 일리가 있다. 저녁이 있는 삶!!! 집에서 쉬고 섭생하고 잘 자고 일어나 기운 내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 어쩌면 제일 중요한 얘기일 수 있겠다. 코로나 덕에 2021년의 수확은 집으로 향하는 마음, 식구들이 모여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점도 있다. 밖으로 향하던 마음과 발길이 안으로 향하고 서로의 소통이 잘되면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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