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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선진국이라는 착각

등록 :2021-10-07 18:14수정 :2021-10-08 14:02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동성애 관용성에서 36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아무리 경제수준이 올라가도 관용이나 신뢰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한국엔 잘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박권일|사회비평가

한국은 ‘선진국’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봐도 그렇고, 케이(K)팝과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봐도 그렇다. 심지어 명품 소비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해할까봐 밝혀두지만, 이 말에 냉소와 경멸은 섞여 있지 않다. 물질문명은 구성원의 수명과 건강을 증진하고, 나아가 이들의 ‘평균적 고통’을 경감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와 동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인류의 관심사는 즉자적 생존에서 ‘삶의 질’과 ‘민주주의의 심화’로 옮겨간다”고 선언했다. 쉽게 말해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타인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관용도 커지며 나아가서 민주주의의 내실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40년 동안 백 수십 국가에서 ‘세계가치관조사’를 진행했고,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경향이 관찰되었다. 그들은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 불렀다.

민주주의는 잉글하트와 동료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민주주의의 심화, 즉 민주주의가 깊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효과적 민주주의’로 옮겨감을 뜻한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 표면적·제도적으로 보장된 민주주의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구비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인 건 아니다. ‘효과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제도로 존재할 뿐 아니라 실제로 개인이 일상에서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평등하게 존중받는 민주주의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부르는 북유럽과 서유럽 몇몇 나라들은 이 ‘효과적 민주주의’가 높게 나타나는 사회다.

한국은 어떨까? “케이-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인의 민주화 자부심은 강하다. 촛불시위는 한국인의 높은 시민의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도 심화된 것일까? 바꿔 말해 한국은 ‘효과적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한국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거의 서유럽 선진국들에 근접해 있으나 ‘효과적 민주주의’에서는 큰 격차를 보이며 아래로 처져 있다. 일본은 물론 대만보다 낮다.(잉글하트·웰젤, <민주주의는 어떻게 오는가>, 2011)

이들의 연구가 무슨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일관된 기준은 있다. 민주주의와 관련해 중요한 요소는 ‘자기표현 가치’(self-expression values)와 ‘엘리트 고결성’이다. 자기표현 가치는 후기산업사회로 갈수록 짙어지는 특징으로서, “친족관계와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유대와 관용, 자유를 향한 열망, 타인에 대한 신뢰, 인류 전체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리킨다. 잉글하트는 동성애 관용성을 특별히 강조하는데, 이것이 자기표현 가치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보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동성애 관용성에서 36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아무리 경제수준이 올라가도 관용이나 신뢰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한국엔 잘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엘리트 고결성’은 쉽게 말해 ‘엘리트가 얼마나 부패하지 않고 청렴한가’다. 효과적 민주주의 지수 자체가 ‘형식적 민주주의’와 ‘엘리트 고결성’의 곱으로 계산될 정도로, 엘리트 고결성은 민주주의 수준에 결정적이다. 한국의 엘리트 고결성은 어떨까? 다들 짐작하듯 처참한 상태다. 최근 대장동 게이트는 한국의 법조 엘리트가 얼마나 철저히 썩어 있는지 다시 확인해주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틈만 나면 “한국 최고위층 부패가 심각하다”고 경고하지만, 이 나라는 늘 그대로다. 이러니 효과적 민주주의 지표가 높게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덧붙여 제기하고 싶은 건 능력주의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불공정’에만 몰입하면서 ‘불평등’은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특권을 쟁취하는 과정의 공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특권 자체를 줄이는 데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하지만 특권을 그대로 둔 채 부패와 불공정에 분노하는 일은, 음식을 한곳에 쌓아 두고 벌레가 꼬인다고 역정 내는 짓이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가 형식적 민주화에 머물 뿐 사회경제 민주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건 아닐까. ‘선진국’에 붙은 따옴표를 떼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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