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서민을 비롯한 주택 실수요자들이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청약통장을 만들어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다 . 보통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청약저축에 가입해 꾸준히 일정 금액을 불입한 뒤 1 순위 자격을 얻어 청약을 신청하고, 당첨이 되면 모아둔 돈으로 계약금을 내고 중도금을 대출받아 꿈에도 그려온 내 집에 입주한다 .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 주택담보대출로 전환된 은행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가야 한다 . 이처럼 내 집 마련의 애환이 담긴 청약통장의 가입자 수가 올해 8 월 말 현재 2815 만명에 이른다 .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65% 가 청약통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1977 년 도입된 주택 청약제도는 지난 40 여년 동안 수없이 바뀌어왔다 . 청약제도의 관건은 가입자들에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분양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 청약제도가 어떻게 변경되느냐에 따라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누군가에겐 일찍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멀어지기도 한다 .
지금은 무주택 기간 , 부양가족 수 , 청약저축 가입기간을 기준으로 가점을 매겨 합계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당첨 여부가 결정된다 . 자녀들이 성장해 내 집이 절실한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최근 집값이 폭등하면서 점수가 낮은 30 대가 청약을 포기하고 ‘패닉 바잉’과 ‘영끌’에 나서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이들의 당첨 기회를 확대해주는 쪽으로 청약제도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 그러자 이번에는 중장년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
이처럼 청약제도는 부동산 정책의 핵심 중 하나다 .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청약제도 개편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
윤석열 후보가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2 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와 ‘공약 표절’ 공방을 벌이다가 “저는 집이 없어서 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 윤 후보는 22일 발표한 국방 공약에서 ‘군 복무자에게 청약 가점 5점 부여’ 방안을 내놨는데, 토론회에서 유 후보가 “제가 지난 7월 초에 발표한 공약과 숫자도 똑같고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공약을 이해하고 있는지 혹시 직접 청약통장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변을 한 것이다. 청약통장이 왜 필요한지, 누가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청약 가점 공약을 발표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 윤 후보는 그동안 언론 인터뷰나 각종 간담회에서 문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을 때마다 “발언의 전문을 봤냐”며 피해 갔으나, 이번에는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중계된 탓에 이런 변명도 통할 수 없게 됐다 .
윤 후보의 문제 발언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 주 120 시간 노동 ’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 ‘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 페미니즘’ ‘정치공작을 하려면 메이저 언론에’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이 그의 편향된 가치관을 드러낸 것이라면 , 이번 청약통장 발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이 안 됐다’는 발언과 함께 식견의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대선에 나올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대표 선거 때 공약으로 내놓은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시험’이 도입됐다면 통과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
대응 방식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윤 후보가 “ 공약에 특허가 있느냐”고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김병민 캠프 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유승민 후보가 청약통장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지엽적인 답변 하나를 꼽아서 다시금 흑색선전, 정치공세에 몰입했다”며 “ 유 후보는 2017 년 대선에서 최저임금 1 만원 달성을 공약했는데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표절한 것인가” 라고 공격했다 . 틀렸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면 될 일인데, ‘지엽적’이라고 뭉개면서 ‘물귀신 작전’을 편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달 29 일 자신의 ‘ 1 호 공약’으로 부동산 공약을 발표했다 . 윤 후보는 “ 취약계층의 주거 복지 확충과 미래세대의 주거 안정 지원에 정부의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무주택 청년 가구를 위한 ‘청년 원가 주택’ 30 만호 , 역세권에 살고 싶어하는 무주택 가구를 위한 ‘역세권 첫집 주택’ 20 만호 공급 등을 내놨다 . 말은 그럴듯한데 진정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4일 페이스북에서 “주택 청약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의 부동산 공약을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공약의 구체적 내용은 후보를 돕는 전문가 그룹과 참모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공약에는 기본적으로 후보의 철학과 비전이 담겨 있어야 한다. 부동산 정책 같은 중요한 공약은 더욱더 그렇다. 준비 안 된 후보가 자신은 물론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