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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지역인재는 누구일까

등록 :2021-08-01 21:08수정 :2021-08-02 02:34

[서울 말고] 박주희 l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동해안에 있는 고향 읍내는 1년에 몇차례 반짝 활기를 띤다. 명절뿐 아니라 여름 휴가철과 겨울 대게철에 관광객이 찾아든다.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상주인구만 남은 일상의 읍내는 늘 활기가 부족했다.

그런데 몇해 사이 읍내 풍경이 시나브로 변하고 있다. 외관이 돋보이는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유행 따라 카페와 편의점도 여럿 생겼다. 수십년씩 자리를 지키던 낯익은 가게들이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기도 한다. 이 산뜻한 가게의 주인들은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났다 돌아와 새 사업을 펼치거나 가업을 물려받은 청년들이다.

가업이라고 하면 전통 기술의 맥을 잇는 장인 집안이 먼저 떠오르지만, 꼭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다. 제목 그대로 <가업을 잇는 청년들>(남해의봄날)을 소개한 책에서 보듯 농부, 시계수리공, 족발집 주인, 책방 주인 등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이 더 많다. 고향 읍내만 해도 가전판매점, 우유대리점, 건어물집, 떡집의 젊은 주인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의욕적으로 가게를 꾸려간다. 농지나 과수원을 물려받아 농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꽤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온 경험과 끈끈한 관계들을 압축적으로 물려받는다. 부모가 일궈온 기반 위에 젊은 감각과 실력을 더해 비교적 단시간에 자리를 잡아나간다. 그만큼 지역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확률이 높다.

이런 가능성에 주목한 지방자치단체들도 가업을 잇는 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가업승계 농업인 지원 조례’를 만들어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은 농업인에게 특별보조금을 준다. 축산업 맞춤형 지원을 하고, 농산물 유통과 가공, 판매에 필요한 경영지원을 한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업장에는 실내장식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인서울 대학’이라는 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인재’들을 서울로 보냈다. 지역 출신들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어 학비를 지원하고, 서울의 비싼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려고 ‘재경 학숙’을 운영하며 숙소까지 제공했다. 지역 기숙사가 수도권에만 20곳이 넘는다고 하니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방값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고 번듯한 직장도 얻었다.

지역마다 이렇게 서울로 대학 간 자식들을 우대한 배경에는 이들의 성공이 곧 지역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재를 많이 길러내면 그들이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리라 기대했다. 나고 자란 곳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 기댄 투자와 확신에 찬 기대였다.

그런데 지역의 자랑이던 ‘서울 대학생’ 대다수는 자연스레 ‘서울 사람’이 됐다. 때때로 찾아드는 관광객처럼 명절 때 혹은 휴가철에 잠시 고향에 다니러 온다. 삶의 터전은 서울이고, 고향은 그저 잠시 쉬어 가는 곳일 뿐이다. 더러 고향을 자주 찾는 서울 사람은 선거 때 명함을 들고 나타나곤 한다. 서울서 공부시킨 자식들이 서울 사람이 되는 사이 고향을 떠난 적 없는 자식들이 내내 그 자리를 지켰고, 인근 도시로 잠시 떠났던 친구들이 돌아와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귀농 가구와 인구가 4년 만에 다시 늘었고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도시민의 귀농·귀촌 의향이 40%를 넘었다. 도시를 떠나 지역에 정착하려는 이에게 돌아갈 고향에 물려받을 가업이 있다는 건 확실히 유리한 조건이다. 최근에는 가업을 물려받을 계획을 세워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실력을 갖추고 돌아오는 청년들도 드물지 않다. 가업을 잇는 것이 또 하나의 희망적인 선택지가 되려면 지역에서도 이들을 환대할 준비가 필요하다. 청년들의 정착은 지역소멸이라는 절망적인 전망 앞에서 지역이 기댈 희망이다. 지역이 키워내야 할 진짜 인재가 누구인지 이제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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