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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람_칼럼 읽는 남자] ‘버리자, 지우자, 쓸자’는 조선일보

등록 :2021-07-21 17:15수정 :2021-07-22 16:03

임인택 여론팀장

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꼽아가며 한국이 “대단히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도 내년 선출될 대통령이 “경세가”일 필요가 없다 말한다. 지금 보수 쪽 대선주자 중 “대통령으로서의 식견과 안목과 자질을 두루 갖춘 사람”(그런 이가 없는 것도 현실이라며)보단 “문재인을 지우고… 자유민주주의로 되돌려놓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쳐낼 ‘싸움꾼’”이 우선이란 게 <조선일보> 대기자 출신의 바람이다. 그걸 공론장으로 활자화해내는 데가 <조선일보>다.

윤석열 등에게 1400년대 전후 ‘피의 숙청’을 일으킨 이방원이 되길 주문하는데 “태종(이방원)이 취약한 왕권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정치적 청소’를 단행했기에 그 바탕 위에서 세종이라는 불세출의 현군의 출현이 가능했다”는 게 그의 요지(7월13일치 30면)다.(하필 그날치 29면에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태종을 주제로 “정적을 척살하는 과정에서 보인 결단과 실행력은 감탄할지언정 우리가 그리워할 대상은 아니다”라는 칼럼을 썼다.)

은유나 정치 구호를 넘어 형벌로서의 ‘청소’를 외치는 그의 절박한 저주, 선동이 무엇을 위함인지 새삼 입에 올릴 까닭은 없다.

게다 대중이 더 가까이 기억하는 역사는, 개혁정권 지우기에 몰두한 이명박 정권 5년 뒤 막상 출현한 건 경세가 대신 박근혜라는 사실이다. 그 지점서 최초의 서민에 의한, 서민의 대통령을 잃었다. 한달 앞선 칼럼에 위 대기자 출신(당시 고문)은 그 대통령을 “잡범”이라 이르며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 것이다”(2009년 4월27일치)라고 적었다.

버리자, 지우자, 쓸자…. 1965년 입사해 지난해 퇴임한 반백년 언론인 김대중의 언어는 70~80년대 남북의 파멸적 선동 구호를 닮았다. 그러니 맞선동이 아닌 한 대응도 어렵다.

독자에게 좀더 쓸모 있을, 칼럼의 허구 논리를 들추는 공론적 비판은 이런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최근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한 <조선일보> 주필 칼럼(‘이제 우리도 일본에 돈 달라는 요구 그만하자’, 6월10일치)에, 임재성 변호사는 “판사들이 소송의 일방 당사자와 노골적으로 결탁한 희대의 범죄”란 팩트들을 감춘 채 외국처럼 국익을 위해 사법과 행정의 ‘소통’이 필요했다 하는 억지주장을 반박했고, 며칠 뒤 류영재 판사는 “법원이 정부·피고와 함께 원고의 패소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하고 수행”한 것이 ‘소통’일 수 없다는 사실에 더불어, “‘위안부’ 재판이나 일제 강제동원 재판의 의미를 ‘금전배상’으로 축소해석하는 시각”의 부당성을 조밀하게 짚었다.

논리가 없어 반박할 수 없는 일방의 칼럼과 논박을 해도 모르쇠 하는 일방의 칼럼. 둘은 양단에서 아득하지만 ‘격렬한 논조’로서 오랫동안 낯선 게 아니다.

공교롭게 경쟁 매체의 이 두 칼럼은 오피니언 담당자로서 시사칼럼의 격을 격렬히 상기시킨다. 기자 출신인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움직이는 세상과 침잠하는 의식 간에 다리를 놓아 여전히 세계에 대해 긴장하고 까다로운 현실을 고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칼럼’ 쓰기 덕분”이라고 했다. 말대로라면 어떤 칼럼(인)은 세계의 긴장 관계를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의 척후병이다. 좋은 칼럼을 만나는 일만큼 나쁜 칼럼을 만나지 않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독자들이 모르는 나쁜 칼럼의 격렬한 내막은 여전히 많다. 류 판사의 칼럼을 읽기 전 일제에 의한 희생도, 5·18도, 세월호도, 민주화운동도 지원금을 부각해 가치와 희생을 ‘환전’시키고 “이제 그만하자” 말하는 부류의 저의를 알고도 또 망각했을 것처럼 말이다.

친일단체 대정친목회가 만든 <조선일보>는 초기 ‘항일적’이었다. 예컨대 1920년 4~8월 일제에 의한 기사 압수, 발매 금지, 정간의 빈도가 <동아일보>보다 많았다 한다. 이는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서도 자랑하는 ‘저항 언론’의 근거다. 하지만 언론역사학자 장신은 <조선·동아일보의 탄생>(2021)에서 검열 콘텐츠들이 실상 경영난 타개를 위한 신문 판매 확장책이었으며, 시장 지배력이 컸던 <동아일보>가 이미 선도한 비판 의제를 “급급”하게 좇아 “격렬하게” 다루다 발생한 결과로 본다. 근거 중 하나로 인용된 1923년 7월 민족 잡지 <개벽>은 그런 사정들로 <조선일보>가 “광적신문”(狂的新聞, 미치광이 신문)이란 별명도 얻었다 보도한다. 또한 몰랐던 내막이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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