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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왜냐면

[왜냐면] 군대와 채식 / 윤지현

등록 :2021-01-13 18:54수정 :2021-01-1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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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ㅣ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식 급식? 여건만 된다면 좋지! 원래 군대급식이 선진적이었어!” 군대의 채식 급식에 대한 딸의 질문에 친정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군대급식을 경험한 군인이셨다. 이러한 아버지의 반응보다 더 놀라운 건 얼마 전 참가한 국방부 포럼의 주제. ‘채식주의자, 무슬림 등 급식 배려 병사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최근 우리나라에도 채식 인구가 늘어나 많게는 150만명에 이른다고는 하나 우리 사회나 군대에서 채식주의자는 아직 소수다.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다원주의와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군대에서 이러한 소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급식 정책을 고민하고 있음은 반가운 충격이었다.

국방부는 이미 급식 방침에 따라 채식을 요구하는 장병들에게 밥, 김, 채소, 과일, 두부, 두유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지휘관이 채식 병사가 급식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군대급식에 이러한 명문화된 규정이 만들어지고 시행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왔음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채식 병사들이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채식 식단을 요구하기에 군대라는 조직은 결코 녹록지 않은 곳일 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채식주의자임을 밝히고 당당히 권리를 요구한 병사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채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군당국 덕분에 이러한 발전적 포럼이 열릴 수 있었던 점은 참 고무적이다. 하지만 현재 군대에서 제공되고 있는 채식 식단에는 개선할 점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고기를 대신하는 단백질 식품으로는 두부만이 거의 매일 제공되고 있다. 채소는 조리과정 없이 거의 생채소로 제공될 뿐이다. 말하자면, 현재 군대급식에서의 채식 식단은 육식을 먹지 않을 ‘자유권’과 함께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식량권’은 보장하고 있지만, ‘건강권’까지는 보장하지 못하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인권 식단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웰빙에 적합한 의식주, 의료 및 사회복지를 포함하는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는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의 의미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남자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징병제 국가가 아니던가?

포럼에서 민간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때 특별한 식사가 필요한지 조사하고, 군 영양사를 확대하고, 조리 및 인권 교육을 강화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채식 제품을 이용하여 식단을 다양화하고 샐러드 바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군대급식의 현장 전문가들은 예산 부족, 조리 인력의 노동 강도 심화, 현장의 인식 부족 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해서, 소수자의 건강권까지 챙기기 위한 정책이 군대급식에 뿌리내리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결코 낮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럼에서 필자가 목도한 군당국의 의지는 그 산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난공불락의 고지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드는 합리적인 의심 하나. ‘풀만 먹고 나라를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죽음을 불사하는 용맹으로 왜군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군대가 바로 채식을 하던 승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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