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찬섭 | 연금행동 정책위원장·동아대 교수
지난 3월22일부터 4월21일까지 한달간 시민대표단 492명을 주체로 한 연금개혁 공론화가 진행되었다. 연금개혁에서 공론화 방식을 적용한 예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다. 이 공론화는 시민대표단의 학습과 분임토의, 그리고 4차례에 걸쳐 티브이(TV)로 생방송한 숙의토론회 등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한 결과 시민대표단의 56.0%는 소득대체율 50%-보험료율 13%의 ‘더 내고 더 받는’ 소득보장론을 지지했고 42.6%는 소득대체율 40%-보험료율 12%의 ‘더 내고 덜 받는’ 재정안정론을 지지했다. 그 격차가 오차 범위를 넘어서는 13.4%포인트로 나타났다. 즉, 세계 최초의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 시민대표단은 오차 범위를 넘는 유의미한 차이로 소득보장론을 더 지지한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 함의는 무엇인가?
먼저 공론화 결과를 연령대별로 보면 20대(53.2% 대 44.9%), 40대(66.5% 대 31.4%), 50대(66.6% 대 33.4%)에서 소득보장론 지지가 높게 나왔고, 30대(48.6% 대 51.4%)와 60대 이상(48.4% 대 49.4%)에서는 양 입장에 대한 지지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기성세대에게 이득을 주고 청년세대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다른 결과다. 기존 통념이 맞는다면 20대는 재정안정론을, 60대 이상은 소득보장론을 더 지지했을 것이지만 실제는 반대로 나왔다. 이는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세대 간 갈등보다는 연대의 가능성이 더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연령대별 차이는 있지만 이 차이를 세대갈등이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이 노후 보장 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이 2005년 52.3%에서 2023년 69.9%로 증가했고, 노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그 주된 수단이 국민연금이라는 응답이 2005년 33.9%에서 2023년 59.1%로 증가했다. 즉, 국민연금은 이제 국민에게 주된 노후 준비 수단으로 상당 정도 자리매김했고 이것이 이번 공론화 결과에도 나타난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도 알 수 있다. 즉 시민대표단의 개인 소득별 공론화 결과를 보면 모든 소득수준에서 소득보장론 지지가 높으며, 지역별로도 서울과 부·울·경을 제외하면 모든 지역에서 소득보장론 지지가 높으며, 경제활동 상태별로도 일용직·특수고용을 제외하면 모든 범주에서 소득보장론 지지가 높게 나왔다. 즉, 지역이나 소득수준, 경제활동 상태, 세대 등에 걸쳐 대체로 소득보장론 지지가 우세한 것이어서 연금개혁이 비록 이해관계가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갈등의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연대의 모습이 다양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론화의 결과와 관련하여 숙의 과정을 진행할수록 소득보장론 지지가 높아졌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공론화에서는 시민대표단을 대상으로 연금개혁에 관한 설문조사를 세 차례 실시했는데 1차 조사는 시민대표단이 구성된 첫날인 3월22일에, 2차 조사는 자료와 동영상을 통한 자가학습이 진행된 후인 4월13일에, 마지막 3차 조사는 숙의토론회까지 진행한 후인 4월21일에 실시했다. 이런 설문조사는 시민대표단의 학습과 숙의가 진행하면서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기 위한 것이다. 시민대표단은 1차 조사에서는 소득보장론 36.9%, 재정안정론 44.8%로 재정안정론을 더 지지했지만 2차 조사에서는 50.8% 대 38.8%로 역전되었고 마지막 최종조사인 3차 조사에서 56.0% 대 42.6%로 소득보장론 지지가 확정되었다. 이는 연금개혁과 관련하여 정보 균형이 보장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잘 보여준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는다거나 보험료가 엄청나게 올라가 미래세대는 파탄에 빠질 것이라는 등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과 세대 간 불공평과 갈등을 부추기는 가스라이팅이 난무했다. 하지만 공론화는 연금개혁에 관한 정보가 균형 있게 제공되고 그에 따른 학습과 숙의가 이루어질 경우 보수언론과 재정론자들의 가스라이팅은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 공은 국회와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와 여당은 21대 국회 때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연금개혁을 거부했지만 22대 국회에서는 공론화로 집약된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받들어 합리적인 연금개혁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