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정기황 한국건축가협회 서울위원회 위원장·건축학 박사

이 글은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를 앞두고 있는 ‘신길2구역 재개발정비사업’과 관련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보내는 공개서한입니다. 이 서한을 통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들에게 3개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대학에서 도시·건축에 대해 배운 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 맞습니까?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는 ‘비정규직노동자쉼터 꿀잠’(이하 꿀잠)이 있습니다.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 노동자의 보금자리로 공익을 실현하는 공간입니다. 꿀잠은 신길2구역 재개발정비사업 구역에 포함되었습니다. 꿀잠은 활동과 공간의 존치를 요구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 이주와 철거를 당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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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사업은 공익사업이고, 이런 이유로 사적소유권을 제한하는 강제수용권이 부여됩니다. 신길2구역은 77% 동의율로 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구역 지정 당시 신길2구역 거주 가구는 총 2790가구였고, 그중 78%에 해당하는 2186가구가 세입자 가구였습니다. 그런데 다수가 외지 소유주인 토지주의 동의로 세입자들에게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는 20% 이상은 강제수용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공익사업을 전제로 주어진 재개발 권한이 실제로 이용되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도시계획의 필독서에서 “도시는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질 때만이 모든 이에게 뭔가를 제공할 수 있다”(제인 제이컵스, 1961)고 말하듯 도시는 시민 주체,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의 재개발 방식은 이에 반대됩니다.

둘째, 공익사업인 재개발로 공익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내쫓고, 토지 소유자라는 이유로 비거주자에게 권한을 부여해 거주자인 다수의 세입자들을 내쫓으며, 지불 가능성이 낮은 고가의 분양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재개발사업에 공익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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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아파트는 “그 머리 위에서 또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살아간다”(<비탈진 음지>, 조정래, 1973)라고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불과 50여년 만에 전국의 주거 유형은 아파트로 획일화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재개발은 전면 철거로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것만을 의미합니다.

주거환경 개선은 불량주택의 정비, 도시 전체의 기능 회복,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재개발은 가장 협의의 주거환경 개선입니다.(도시개발국제회의, 1958) 1970년대부터 공공 부문의 적극적인 참여와 광역 단위의 계획 수립, 충분한 공공시설 확보, 토지공개념, 불로소득·개발이익 환수 등 재개발 문제는 꾸준히 지적되어왔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심지어 1987년 개정된 헌법 35조 3항에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개발 정책 발표나 언론 기사를 보면 도시의 필요나 주거의 가치가 아닌 아파트 단지 개발을 전제로 대지 면적, 용적률, 공급량, 입지 조건만을 발표하는 양적 공급에 맞춰져 개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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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재개발 도시계획 심의가 재개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도시 전체의 기능 회복과 공공재인 도시 경관 등 도시계획 차원의 계획이 아니라, 최소한의 법적 기준으로 용적률을 완화하며 고층의 아파트 단지로 빠르게 건설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과연 맞습니까?

이상의 질문에 대해 도시건축 학자와 전문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서울시민을 대표해 공익적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의 실명으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답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