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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졸본②

등록 :2004-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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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고정물)

졸본(졸보노·솔보노)의 자리를 두고 기록이 엇갈린다. 가리소모로(송화강)를 건넌 뒤 추모왕의 행적은 ①모둔곡→졸본천→비류수 ②보술수→흘승골성 ③졸본부여 등이다. 졸본은 광개토대왕비의 골본(홀본·忽本)에 해당한다.

흘골산성(흘승골=무싱골)과 비류수에 대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설명, 행인국·태백산의 자리, 해명태자와 용강국, 호동왕자와 낙랑국의 관계를 볼 때 성천 부근이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였다. 달리 졸본에 대해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흥경(허투알라)이라 했고, 〈요사〉에서는 국내성 서북 380리에 있다고 하니 심양쯤에 해당한다. 졸본의 시조 사당에 가는 데 국내성에서보다 평양에서 더 많이 걸린다. 이는 졸본이 성천이 아닐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최근 들어 요령성 본계시 환인현 동북 8.5㎞에 있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을 ‘홀본/졸본’ 자리로 꼽는다.

이 혼란의 실마리를 어찌 풀까? 고구려 왕통은 초기에 소노부(서부)에서 임금 자리를 맡았다가 나중에는 계루부(중부)에서 맡았다. 역사서에서 두 집단이 갈렸음에도 한 왕통처럼 기록되었다. 국내성을 계루부(중부) 집단으로 보면 졸본은 소노부(서부) 집단임이 분명하다. 이 때 졸본이 오녀산성이든, 흥경(고구려현에 가까움)이든, 심양이든 이해가 되고, 계루부 세력이 성천 부근에서 커 국내성으로 들어간 것을 알게 한다.

〈위서〉를 보면, 추모왕의 아들은 여달(閭達)이고 손자가 유리다. 유리가 찾아오자마자 다섯 달도 안 돼 추모왕은 세상을 떠나고, 졸본부여에서 낳은 비류와 온조는 남쪽으로 가 백제를 세운다. 이 석연찮은 과정에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왕권의 갈림이 있었고, 추모의 아들로 기록된 유리왕 때부터 계루부 왕권이 선 것으로 보인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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