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앞두고 심진태(가운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이날 오전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낼 서한을 공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심 지부장 등 한국인 원폭 피해자 1·2세 6명이 참석했다. 히로시마/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앞두고 심진태(가운데)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이날 오전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낼 서한을 공개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심 지부장 등 한국인 원폭 피해자 1·2세 6명이 참석했다. 히로시마/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을 해줬어요. 그건 처음이니까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핵무기를 어떻게 없애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요.”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을 현지에서 지켜본 심진태(73)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의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핵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이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핵무기를 없애겠다는 게 아니고 줄여가겠다고만 했는데, 이게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미국이 반드시 행동을 해서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를 방문한 한국인 피폭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방문하지 않는 데 대해 짙은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과 현장을 동행한 박석분 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은 “다들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존재가 언급이 되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시면서도 조금만 옆으로 가면 한국인 위령비가 있었는데 어떻게 안 들를 수가 있냐고 아쉬움을 밝혔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한 재일동포 이종근(88)씨도 “오늘 오바마 대통령 방문 행사장에 한국 피폭자는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아침에 너무 억울해서 히로시마시장에게 전화를 해 한국 피폭자들이 지금 왔으니 들여보내달라고 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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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선 이날 오전 심 지부장 등 한국인 원폭 피해자 1·2세 6명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평화운동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한국인 방문단은 한국인 위령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비석 앞에서 우리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정순(57)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뇌성마비를 가진 아들(34)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아들은 올해 34살이지만 뇌성마비로 아무것도 못한다. 저의 전쟁은 그때(1945년 8월) 끝나지 않았다. 저희는 태어나는 날부터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문단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인정, 조사, 사죄, 배상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서한을 일본 기자들에게 배포하며 한국인·조선인 피폭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히로시마/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