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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정부는 안전하다지만 젊은이들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

등록 :2016-03-06 19:29수정 :2016-03-07 00:57

수상한 반점의 소…  일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에 있는 ‘희망의 목장’의 소 330여마리 가운데 20여마리의 피부엔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얀 반점들이 돋아나 있다. 주민들은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피폭의 영향일 것이라 추정한다.
수상한 반점의 소… 일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에 있는 ‘희망의 목장’의 소 330여마리 가운데 20여마리의 피부엔 원인을 알 수 없는 하얀 반점들이 돋아나 있다. 주민들은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피폭의 영향일 것이라 추정한다.
후쿠시마 원전 참사 5돌 현지 르포

피난지역 해제 6개월 나라하마치
상점가 셔터 내려 아직 ‘유령도시’
주민 6% 459명 귀환…대부분 고령
“사고가 터질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 모두가 ‘안전하다,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말했지.”

지난달 25일 오후, 후쿠시마현 나라하마치. 5년 전 발생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참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다카키 히데카쓰(69)의 말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고향인 나라하마치가 피난지시구역에서 해제된 뒤 오랜 피난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귀환자 가운데 한 명이다. “나이가 들어 방사능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다카키에게도 3·11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방사능쓰레기 적치장 여전  후쿠시마 제1·2원전과 연결된 간선도로 주변 곳곳엔 제염 쓰레기를 모아 둔 대형 적치장들이 있다. 제염이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표면의 토양 등을 긁어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뜻한다. ‘귀환곤란지역’이란 표지판 너머엔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다.
방사능쓰레기 적치장 여전 후쿠시마 제1·2원전과 연결된 간선도로 주변 곳곳엔 제염 쓰레기를 모아 둔 대형 적치장들이 있다. 제염이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표면의 토양 등을 긁어내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뜻한다. ‘귀환곤란지역’이란 표지판 너머엔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다.
사고가 터진 2011년 3월11일 다카키는 35년 동안 근무하던 원전 관련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고향인 나라하마치 남초등학교의 스쿨버스 운전을 하고 있었다. 3월인데도 진눈깨비가 날리는 추운 날이었다. “그날 추웠지. 버스에 시동을 걸고, 난방을 켜고, 아이들을 집에다 데려다줄 예정이었어.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버스가 미친 듯 흔들리는 거야.”

세상이 곧 망해버릴 것 같은 진동이 잦아들자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키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학교는 그날 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체육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했다. 다음날 전혀 상상도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15㎞쯤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전에 이상이 발생해, 모두가 피난을 가야 한다는 통보였다. 기약 없이 이어지게 될 피난 생활의 시작이었다.

도쿄에서 많은 관광버스가 동원돼 주민들을 처음엔 남쪽의 이와키시로, 그리고 나중엔 서쪽으로 100여㎞ 떨어진 아이즈로 실어 날랐다. 다카키도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6월께 피난지인 아이즈미사토마치에 주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가설주택이 만들어졌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3·11 참사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주민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등 떠밀려 돌아온 노인 “지금도 여긴 방사능 제로 아냐”

“정든 곳이라 여생 보내려…”

전기·수도·도로 등 인프라 복구
내년에는 초중교 재개교 예정
고령자 60% 귀환 뜻 밝혀
20대 이하 20%…30~40대 30% 안돼

나라하마치의 정사무소(동사무소)엔 임시 상점이 만들어져 있지만,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작업원들이 몰려드는 점심 시간을 빼면 이용객 수가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지난해 결산 때는 무려 7000만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나라하마치의 정사무소(동사무소)엔 임시 상점이 만들어져 있지만,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작업원들이 몰려드는 점심 시간을 빼면 이용객 수가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지난해 결산 때는 무려 7000만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겨레>는 3·11 사고로 마을 전체가 강제 피난을 가게 된 후쿠시마의 여러 마을 가운데 지난해 9월 마을 전체가 피난지시구역에서 해제된 나라하마치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마을 전체에 피난 지시가 내려졌던 후쿠시마 7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본격적인 귀환이 시작된 곳은 나라하마치가 처음이다. 일본 정부는 이 지역을 후쿠시마 부흥의 성패를 가리는 시금석으로 보고, 다양한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곳은 현재 폐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후쿠시마 제2원전의 입지이기도 하다.

마을이 피난지시구역에서 해제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귀환 사업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사고 전 마을 인구(8100명) 가운데 귀환자가 2월 초 현재 6% 정도인 459명에 불과하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남쪽의 이와키시(5500명)로 이주했고, 아예 후쿠시마현을 떠난 사람도 900여명이나 된다. <한겨레>가 지난달 25일 찾은 마을의 관문인 제이아르(JR) 다쓰타역 앞의 상점가는 모두 셔터가 닫힌 채 유령도시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귀환자가 400여명이라곤 하지만, 60살 이상 노인 세대가 대부분이다.

다카키 부부가 귀환을 결심한 이유는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집’ 때문이다. 부인인 다쓰코(65)는 “30년 전 남편과 이곳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사고 3년 전에 돈을 들여 집을 싹 수리했다. 그런 집을 놔두고 떠날 순 없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정부의 귀환 계획이 성공할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했다. 다카키는 “현재 이곳의 방사능이 제로가 아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마을 곳곳에 설치된 방사능 선량 측정계에서 확인한 선량은 0.2μ㏜(마이크로시버트)/h 전후로 일본 정부가 정한 피난 기준인 3.8μ㏜(연간 20m㏜(밀리시버트) 이하에 상당)를 한참 밑돌고 있었다. 일본 시민사회는 피난 기준을 연간 20m㏜가 아닌 1m㏜로 낮춰야 한다고 맞서고 있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치르고 싶어 하는 일본 정부는 이런 외침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카키는 “노인들은 방사능이 아니라 다른 병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나와 아내는 여생을 여기서 이웃들과 즐겁게 교류하며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하는 아들을 둔 와타나베 도시마사(48)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그는 참사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즈미사토의 가설주택에 산다. 와타나베는 “귀환을 결심하신 분들은 자식들이 다 독립하고, 정년도 다 지나신 분들이다. 우리처럼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국가가 ‘이젠 안전하다’고 말해도 쉽게 결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내와도 여러모로 상의를 했지만 “아이가 걱정된다”는 아내의 뜻을 꺾진 못했다. 그의 부인은 중학교에 진학한 아들을 위해 교육환경이 좀 더 나은 이와키로 이주했다. 와타나베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젊은 사람들은 각지에서 이미 다 적응을 끝냈다. 어른들은 직업을 찾았고, 아이들은 새 학교에 적응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좀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일본 정부가 실시한 나라하마치 주민들의 귀환 의향 조사 결과를 봐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조사에 응한 주민 가운데 60살 이상에선 ‘이미 귀환’ ‘조기 귀환 예정’ ‘조건 정비 시 귀환’ 등 귀환에 긍정적인 의견이 60% 정도였지만, 20대 이하에선 20% 남짓, 30~40대에서도 30%를 넘지 못했다. 주민들은 2014년 조사에선 귀환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원전의 안전성이 불안하다”(54.9%) “수돗물이 불안하다”(51.9%) “방사선량이 떨어지지 않는다”(45.4%) 등을 꼽았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여러 지원책을 쏟아내며 주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현재 마을의 전기·수도·도로 등 인프라는 복구됐고, 2월1일엔 노인들을 위한 진료소도 문을 열었다. 내년 4월엔 젊은 세대의 귀환을 촉진하기 위해 현재 폐교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시 열 예정이다. 정사무소(한국의 동사무소)는 주민들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상업시설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앞으로 마을은 어떻게 될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린 참사 이후 모두가 탈핵론자로 변했을 것이란 예상은 손쉽게 빗나가고 말았다. 수십년 동안 일자리를 제공해온 도쿄전력과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아이즈의 가설주택에서 만난 주민 엔도 기요에(63)는 “원전이 생기기 전 나라하마치는 반농반어의 가난한 마을이었다. 겨울이 되면 생활을 위해 모두가 다른 지역으로 돈을 벌러 나가야 했지만 원전이 생긴 뒤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졌다”고 말했다. 그의 장모는 피난 생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2011년 8월 가설주택에서 숨졌다. 원전 사고로 가족까지 잃었지만, 원전 없는 나라하마치는 생각할 수 없단 얘기였다.

아들 때문에 귀환을 망설이고 있는 와타나베도 “이곳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도쿄전력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그래서 제2원전에 대해 무조건 폐로, 폐로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돌아올 사람들은 돌아오고, 폐로 작업에 참여 중인 노동자들이 정착해 당분간은 폐로, 그다음엔 제2원전 재가동을 통해 마을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라하마치 정사무소 앞을 지나는 국도 6호선엔 ‘나라하, 자연과 과학이 창조하는 풍요로운 향토’란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 길을 따라 북상하면 마을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준 후쿠시마 제1·2원전을 지나게 된다. 도로 위엔 ‘과학’(원전)의 실패를 뒷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폐로 작업용 트럭들이 늘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원전에 길들여져 원전 없인 존재할 수 없는 원자력의 마을. 3·11 참사 5주년을 맞는 나라하마치의 민낯은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라하·아이즈미사토(후쿠시마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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