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해. 그렇지 않고서는 ‘4·3 문제’가 해결이 안 돼. 이제 내가 아흔인데, 이 늙은이가 언제까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10일 오후 일본 도쿄 외곽의 한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에서 마주한 재일 조선인 소설가 김석범(90·사진) 선생은 아직 울분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는 애초 이번주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다.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에서 제주 4·3에 대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 <화산도>의 번역 작업을 마치고 16일 ‘재일 디아스포라문학과 글로벌리즘’이라는 제목의 기념 심포지엄을 열기로 해서 초청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고국 방문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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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내가 짐작을 해. 지난봄에 내가 제주 ‘4·3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해서 한 연설 내용이 문제가 됐겠지.”

그는 지난 4월 시상식 석상에서 “이승만 정부는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표방했지만,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돼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겠냐”며 ‘돌직구’를 날렸다. 이 발언이 공개된 직후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이 “좌우 이념논쟁을 넘어, 대한민국의 건국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반대한민국적인 발언”이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이를 이어받아 보수언론들이 “(그의 수상 소감은) 북한이 해온 주장 그대로”(<조선일보>), “대한민국을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정권’이라고 폄훼한 사람에게 국민 세금으로 상금을 주는 것은 지나칠 수 없다”(<동아일보>)고 맹공을 퍼부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이념 대립 쟁점인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려 박근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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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동국대 심포지엄 참석할 예정한국 정부 ‘입국 거부’로 귀국 못해“4월 ‘4·3평화상’ 수상 연설이 빌미”‘이승만 정권 정통성 거론’ 괘씸죄? 1988년 ‘화산도’ 출간 이래 13회 방한“나라 도량이 이래서야…” 끝내 눈물

김씨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1945년 8·15 해방에서 4·3이 터지고 남북이 갈라서게 되는 48년까지의 “해방 3년사를 바로 보지 않고선, 4·3의 비극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몬 거야. 우린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을 못 했고, 그 토대 위에서 이승만 정권이 성립된 거지. 친일파들이 이제는 친미파로 변해서 제주에서 4·3이란 비극이 일어났어. 4·3은 해방공간의 역사가 뒤틀려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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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해의 연장선에서 김씨는 “제주 4·3은 내외의 침공자(미군과 친일파)에 대한 방어 항쟁이며 민족독립 해방투쟁의 정신에 이어지는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 투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사실 김씨의 입국을 둘러싼 갈등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7월 김씨는 실천문학사에서 1차로 번역을 마친 <화산도>의 출간에 맞춰 방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가 60년대 말까지 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자였다는 점을 들어, 또 “내 조국은 남도 북도 아닌 통일 한반도”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조선적(일본에서 무국적으로 취급됨)을 유지하고 있다는 구실로 입국을 불허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며 그는 지금까지 13번이나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김씨의 입국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 사회는 다시 군사독재가 이뤄지던 88년 이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김씨는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달리 “현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87년 ‘6월혁명’ 이후 개정된 헌법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이 나오고, 노무현 대통령의 2005년 3·1절 연설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는 정통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4·3을 일으켜 제주도를 피로 물들이고 대한민국을 분단으로 몰고 간 친일파 세력이지, 한국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일궈낸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란 뜻이다.

“옛날에, 우리가 젊었을 땐 이렇게 될지 몰랐네. 빌어먹을 (민족의 분단이) 벌써 70년이네. 내가 4·3에 왜 그렇게 평생 동안 천착해 왔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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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에 걸쳐 열정적으로 의견을 쏟아내던 늙은 작가의 눈엔 결국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우리가 해방이 된 게 언제인데, 그 정도 말도 못 하나. 나라의 도량이 그래서야….”

도쿄학예대의 이수경 교수(역사사회학)는 “김 선생의 입국을 거부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한민족을 희망으로 바라보며 살아온 동포들의 한스런 삶을 간단히 무시하거나 버리면 그만이란 식으로 보여 안타깝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그릇이 작아서야 어떻게 앞으로 700만 국외 동포를 껴안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준비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선생처럼 총련에서 나온 재일동포들이나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젊은 동포들을 대한민국이 끌어안아야 한다”며 “김 선생의 의견에 대한 찬반과 입국 거부는 별개의 문제로, 우리 동포를 또다시 기민이 되게 하는 불행을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