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유사사태(전쟁)가 발생하면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일본에 어떤 역할을 기대할까? 역사를 돌아보면 답은 의외로 분명해진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 뒤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사령관이 일본에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육상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전후 재군비의 첫발을 떼게 된다. 자위대는 애초 한반도 유사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셈이다.
그 직후인 1950년 10월 일본 해상보안청(당시는 해상자위대 창설 이전)은 미군의 지시로 한국 해역에서 활동할 특별소해부대를 편성한다. 이 부대는 38선을 넘어 영흥만으로 이동한 뒤 원산 상륙작전에 대비해 기뢰 제거를 하도록 명령받았다. 그 와중에 배수량 135t인 소해정 MS14호가 기뢰를 건드려 승조원 27명 가운데 18명이 중경상을 입고 1명이 숨지는 사고도 났다. 이런 사실은 1978년 당시 해상보안청 장관이던 오쿠보 다케오의 책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고, 1998년 <해상보안청 50년사>를 통해 공식화된다.
전쟁중인 국가의 기뢰를 제거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방어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국제법상 명백한 참전 행위로 간주된다. 지난 15일 공개된 일본의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 보고서도 이를 해당국에 대한 ‘무력행사’라고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도 모르는 사이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했고, 이것이 수십년 뒤에나 밝혀진 셈이다. 또 한반도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주일미군은 일본이 제공한 기지를 통해 한반도에 투입된다. 그 때문에 한반도 유사사태와 일본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많다.
일본은 1999년 주변사태법을 제정해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미군에 무기와 탄약을 운송하는 등의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튼 바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후방 지원이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한반도 사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틀어쥔 미국이 작전상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일본의 참전을 받아들이도록 한국에 요구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