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3세인 최강이자(49) 다문화 종합교육시설 ‘후레아이관’ 관장.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재일동포 3세인 최강이자(49) 다문화 종합교육시설 ‘후레아이관’ 관장.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가와사키시 조례는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방패막이입니다. 이 지역사회에서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허락하지 않고, 피해자를 지켜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니까요.”

자이니치(재일동포) 3세인 최강이자(49) 다문화 종합교육시설 ‘후레아이관’ 관장은 가와사키시의 ‘차별 없는 인권존중 마을 만들기 조례’를 만든 주역 중 한 명이다. 가와사키 시민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20년 7월1일부터 전면 시행된 이 조례는 인종·국적·민족·성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 최고 50만엔(약 4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공공장소에서 이뤄진 차별·혐오 발언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둔 것은 일본 지방 정부 가운데에선 가와사키가 처음이다. 조례 시행 2주년을 앞둔 17일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있는 후레아이관에서 최 관장을 만났다.

“조례가 시행되고 지금까지 벌금형이 부과된 사례는 없었어요. 조례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헤이트 스피치가) 억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죠.” 조례가 만들어진 뒤 일본 내에서 재일동포들이 모여 사는 지역 중에 하나인 가와사키시 내에서 극우단체의 집회나 차별·혐오 발언은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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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별과 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리에 나설 수 없게 된 이들은 익명을 무기삼아 온라인에 글을 올리거나 협박 편지 등을 통해 더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최 관장 앞으로 ‘끔찍한’ 우편물이 도착했다. “에이포(A4) 종이에 ‘죽어’라는 말이 14번이나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코로나19가 굉장히 심각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묻은 것이라며 과자 봉투도 함께 넣었더군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다. 최 관장은 ‘그날 이후’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려, 칼에 찔리는 것 등을 막아주는 ‘보호 조끼’를 입기 시작했다. “이걸 입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어요.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이 커요.” 우편물에 대해선 경찰에 협박죄로 고소를 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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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관장은 온라인상의 차별·혐오 발언을 없애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2016년부터 6년 넘게 꾸준히 최 관장을 위협하는 글을 올린 이바라키현에서 살고 있는 40대 남성을 특정해 내 지난해 11월 305만엔(약 29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남성이 쓴 글 가운데 심각한 것만 추려내도 70건이 넘는다. 이 남성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쓴 차별·혐오 글에 대해 “개인적 견해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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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2017년 7월 시민들이 ‘같이 행복하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2017년 7월 시민들이 ‘같이 행복하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 관장은 이 남성이 올린 글 가운데 ‘조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70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자이니치가) 일본 사회에 일원임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부모, 나 자신, 아이의 삶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돌아가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협박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를 떠올리고 증명하는 재판 과정이 힘들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의 투쟁은 이미 개인의 싸움이 아니게 됐다. 재판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일본 전역의 재일동포들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수십 년 동안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체념한 채 살아온 이들이었다. 동포들은 싸워줘서 “고맙다”, “상처가 회복됐다”고 말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재일동포니까, 외국인이니까 차별을 당하면서도 견뎌냈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처와 아픔은 잊혀지지 않는 거죠.”

일본 사회도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6월부터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의 추진에 관한 법’ 일명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됐다. 벌칙 조항이 없어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지만, 이 법을 통해 ‘헤이트 스피치’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2016년 1월 오사카시를 시작으로 지난달 미에현까지 일본 내 17곳의 지방 정부도 차별·혐오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과 혐오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엔 일본인 20대 남성이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아이치현 본부와 나고야 한국학교 시설에 불을 질러 건물 벽면 등을 훼손했다. 8월엔 교토 우토로 마을 빈집에 불을 질러 가옥 7채가 탔다. 이 남성은 검찰 조사에서 “한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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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라인은 무법 상태예요. 적어도 ‘빨간불에 차가 멈춰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최 관장은 차별과 혐오가 발생했을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시간과 돈이 드는 재판에 가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이 조속히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적 인권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 관장은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이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회복하고, 차별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