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도 구니타치시에 있는 공공 예술기관인 구니타치시민예술홀 갤러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 2022’ 전시회에 관람객이 줄을 서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우익세력의 방해로 무산된 전시가 10개월 만에 시민들과 마주했다. 도쿄 전시는 2015년 1월 이후 7년3개월 만이다.
이날 아침부터 전시장 주변에선 긴장감이 고조됐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인 오전 10시부터 우익 단체들이 대거 몰려와 확성기를 동원해 “전시를 중단하라”, “일본의 수치다. 일본을 떠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우익 인사들은 전시장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들 맞은편에선 전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 용서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긴 팻말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전시는 시간당 40명씩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됐다. 우익들의 집회는 계속됐지만, 관람객들은 감상에 집중했다. 노인부터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평화의 소녀상’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도쿄에 사는 50대 일본인 남성은 소녀상 옆에 놓인 의자에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섰다. 이 남성은 “일본에서 전시조차 어려운 ‘평화의 소녀상’을 꼭 한번 실물로 보고 싶었다. 지난해 예약했다가 전시가 무산돼 아쉬웠다”며 “직접 와서 보니, 슬픈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소녀상을 한참 바라보던 50대 일본인 여성은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실물은 처음 봤다.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위안부’ 피해자가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며 “한-일 사이에 아직도 이 문제가 정리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우익 인사들의 전시 방해에 대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표현의 자유는 꼭 지켜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 16팀이 참여했고, 오는 5일까지 열린다. ‘평화의 소녀상’ 이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 일본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일왕 관련 작품 등을 선보였다.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회의 이와사키 사다아키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작품을 볼 기회를 강제적으로 빼앗는 일이 통용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시를 개최할 수 있게 돼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실행위는 나흘 동안 약 1600명의 시민이 이번 전시를 관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 자원봉사자만 240명, 변호사 약 60명이 지원하고 있다.
올해 도쿄를 시작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전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카모토 유카 실행위 공동대표는 “지난해 전시가 중단됐던 나고야가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외 다른 2개 지역에서도 전시 개최를 위한 실행위원회가 결성됐다”고 밝혔다.
도쿄/글·사진 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