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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는 어두운 역사도 담아내는 것”

등록 :2022-03-28 04:59수정 :2022-04-11 16:36

[인터뷰] <비극의 세계유산> 쓴 이데 아키라 가나자와대 준교수
“일 정부, ‘역사의 그림자’ 부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사도광산 에도시대로 한정, 합리적 설명 가능할지 의문”
지난해 &lt;비극의 세계유산&gt;이라는 책을 쓴 이데 아키라 일본 가나자와대 준교수. 이데 아키라 교수 제공
지난해 <비극의 세계유산>이라는 책을 쓴 이데 아키라 일본 가나자와대 준교수. 이데 아키라 교수 제공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비극의 기억이나 어두운 역사도 함께 담아내는 것이다.
사도광산도 마찬가지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는 5월10일 임기를 시작하는 ‘윤석열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한-일 간의 껄끄러운 외교 현안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양국 정부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지난해 <비극의 세계유산>이라는 책을 쓴 이데 아키라(54) 일본 가나자와대 준교수는 22일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에선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빛나고 자랑스러운 유산’, ‘지역의 명예’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네스코는 전체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일본 정부는 “역사의 그림자 부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도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근대 산업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어두운 유산’ 전체로 시야를 넓혀 볼 것을 조언했다.

―일본 사도광산의 등재 문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일은 각각 사도광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일본 자민당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전직 총리 세명이 참여하는 ‘새의원연맹’을 오는 28일 발족할 예정이다. 한-일 사이에 다시 ‘역사전’이 벌어진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에서 ‘역사전’이라고 하면 한국과 싸우는 듯한 이미지가 생긴다. 세계유산 등록은 한국과의 싸움이 아니라 유네스코를 설득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상대가 다르다. 한국에서도 ‘징용공’ 문제만 강조하는데, 능숙한 전략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만 부각되니 ‘반일·반한’ 등 정치적으로 휩쓸리고, 논점이 축소되는 느낌이다.”

―한-일이 발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한-일을 넘어서는 좀 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근대 산업사회의 전반을 이야기하며, 이 가운데 하나로 징용공 문제가 있었다고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근대 산업사회가 발전하며 당시 세계 어디에서나 식민지 지배와 열악한 노동, 환경 파괴, 노동재해, 대규모 사고 등 ‘어두운 유산’이 존재하게 됐다. 산업유산에는 그런 근대의 아픔이 집적돼 있다. 이런 다양한 측면을 다루면서 징용공 등 식민지나 경제력이 취약했던 국가에서 이뤄진 노동력 이동 문제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일본 정부는 1989년 폐광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대상 시기를, 에도시대(1603~1867년)로 한정해 등재를 추진하는데?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의 ‘전체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015년 산업유산으로 등록된 나가사키 하시마(군함도) 탄광을 포함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해서도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사도광산을 에도시대로만 한정하는 것에 일본이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징용공 문제뿐만 아니라 폐광 때까지 전체 역사를 보여줘야 유네스코를 설득할 수 있다.”

―사도광산 논란을 보면, 2015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등재 때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일본에선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빛나고 자랑스러운 유산’, ‘지역의 명예’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정부도 세계유산을 말하면서 지역의 진흥, 훌륭한 일본의 문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유산의 취지는 인류 모두에게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계승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극의 기억, 어두운 역사도 그 대상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목적으로 한다면 ‘역사의 그림자’ 부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빛나는 부분만 강조하면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엷어져 보편적인 가치가 손상된다. 그 시대와 지역을 다방면으로 인식할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도 그렇다. 한국은 징용공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뿐 아니라 노동환경, 산업재해 등 근대 산업사회의 어두운 부분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설을 둘러싼 역사의 전체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유네스코가 올해 말까지 수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비극의 기억, 어두운 역사를 다룬 대표적 세계유산은 어떤 것이 있나?

“세계유산은 1978년 처음 등재가 이뤄졌다. 문화유산 8곳, 자연유산 4곳 등 12곳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아프리카의 ‘고레섬’이다. 이 섬은 노예무역이 번성했던 곳으로 인류 비극의 기억이 고스란히 채워져 있다. 다음해인 1979년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등재됐다. 세계유산은 초창기부터 이렇게 비극의 기억을 갖고 있는 곳을 중시했다.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죄수 유적군’도 흥미로운 곳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이 산업혁명기에 ‘죄수들’을 유배 보낸 곳이었다. 죄수들은 영국에서 빈곤에 시달리다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로,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계가 많았다. 이곳에선 산업사회의 어두운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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