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볼 대표팀이 21일 일본 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린 호주와의 경기를 앞두고 도열해있다. 후쿠시마/AP 연합뉴스
일본 소프트볼 대표팀이 21일 일본 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린 호주와의 경기를 앞두고 도열해있다. 후쿠시마/AP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이 21일 일본과 호주의 소프트볼 경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이날 후쿠시마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린 소프트볼 경기는 이번 올림픽 첫 경기로, 이번 대회를 ‘부흥올림픽’으로 규정해온 일본 입장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큰 피해를 본 후쿠시마의 재건을 전 세계에 공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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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일본 정부의 이런 구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양새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28일 아즈마 야구장에서 열리는 일본과 도미니카공화국의 야구 경기 때 시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일본 내 여론이 악화하자,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후쿠시마 문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전 세계 취재진이 모여드는 도쿄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도 부흥올림픽 홍보관이 마련됐다.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 등 재난 피해 지역에서 나온 꽃과 후쿠시마에서 만든 나무의자 등으로 꾸민 공간이다. 20일 만난 이곳 직원은 “피해 지역의 꽃은 올림픽 부케로 쓰이고, 농산물은 선수촌에 공급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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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산 꽃으로 꾸며진 메인프레스센터 내 부흥올림픽 홍보관의 모습. 이준희 기자
후쿠시마산 꽃으로 꾸며진 메인프레스센터 내 부흥올림픽 홍보관의 모습. 이준희 기자

후쿠시마 농산물 문제는 최근 대한체육회가 현지에서 직접 만든 도시락을 한국 선수들에게 공급하기로 결정하고, 일본 정부가 이에 반발하면서 한일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은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일본 내 불안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재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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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한국에서는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뉴스의 한 장면이 인기를 끌었다. 아나운서 나카야마 카나가 3일 시즈오카에서 일어난 산사태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상대의 안전이 확보되지 못한 것을 먼저 확인하고는 곧바로 인터뷰를 멈춘 뒤 대피를 요청하는 영상이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재난방송을 진행하는 모습도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위기 상황에서, 원칙에 따라 맡은 바 역할에 충실히 하는 모습에서 경이를 느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재난 상황에서 이런 원칙적 대응과는 먼 행태를 보여왔다. 대지진이 일어난 뒤 피폭 가능성에 대한 검증 대신 ‘먹어서 응원하자’는 캠페인부터 성급하게 진행해 의구심을 키웠다. 최근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도 마찬가지다. 일본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비등한데 특히 후쿠시마를 비롯한 도호쿠 지역은 오히려 반대 목소리가 크다. “신뢰 없는 결정으로, 후쿠시마를 다시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동일본대지진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비극이다. 피해 지역의 빠른 회복과 이곳 주민들의 ‘부흥’을 바라는 마음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볼 경기, 바흐 위원장의 시구, 부흥올림픽 홍보관과 그저 ‘믿으라’는 일본 정부의 동어반복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후쿠시마를 되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도쿄에서 열리는 대회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 현지매체에 실린 한 후쿠시마 농민의 반문이다. 일본 정부는 언제까지 국내외 여론에 귀를 닫고 있을까. 도쿄/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