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유럽에서 날아온 승객들이 통로를 빼곡하게 메운 채 세관 통과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각)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유럽에서 날아온 승객들이 통로를 빼곡하게 메운 채 세관 통과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유럽발 미국 입국 금지’ 조처를 내린 뒤 미국내 주요 공항들이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정부의 조처는 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지만, 앞으로 발길이 묶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둘러 비행기에 오른 미국인들이 몰려들면서다.

15일(현지시각) 오후 찾아간 워싱턴 인근의 덜레스국제공항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온 승객들과 마중나온 인파로 분주했다. 이 공항에서는 이날 도착 승객에게 발열체크는 하지 않고 문진만 진행해서인지 큰 혼잡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차단’이라는 미 정부의 예상 밖 조처에 놀라 황급히 짐을 싼 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런던에서 날아온 50대 여성 베스 러셀은 기자에게 “런던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갔다가 뉴스를 보고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비행기를 탔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무섭다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못 구할까봐 일정을 조정했다”며 “입국 과정에서 ‘지난 14일간 영국 외에 다른 나라에 갔었느냐’, ‘열이나 기침이 있느냐’고 묻길래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미 정부는 ‘미국인은 언제든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미국인들은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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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온 30대 존 화이트는 “파리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듣고 서둘러 비행기표를 구해 함께 귀국했다”고 말했다. 이들 커플은 “비행기 착륙부터 세관 통과까지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마리아 켈리(20)는 “이번 수업과정은 4월 중순까지인데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는 바람에 귀국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학교로 다시 돌아갈 계획이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며 울상을 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26개국에 대해 미국 입국 금지 결정을 발표했고, 14일에는 영국과 아일랜드도 이 조처에 추가했다.

미국 워싱턴 인근의 덜레스국제공항에서 15일(현지시각) 오후 파리와 런던 등 유럽에서 도착한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덜레스공항/황준범 특파원
미국 워싱턴 인근의 덜레스국제공항에서 15일(현지시각) 오후 파리와 런던 등 유럽에서 도착한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덜레스공항/황준범 특파원

덜레스공항보다 이용객이 훨씬 많고 발열체크까지 진행된 다른 공항들에서는 아비규환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는 착륙해서 공항을 빠져나오기까지 최대 10시간까지 걸렸다는 불만이 폭주했다. 포르투갈에서 출발해 지난 14일 이 공항에 도착한 엠마 로쉬는 “입국 심사 받는 데 3시간, 건강 체크를 통과하는 데 2시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체크를 통과하는 데 1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입국자들이 발디딜 틈 없이 공항 통로를 가득 메운 사진들이 올라왔다. 정부의 준비 부족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혼란과 지연을 양해해주기 바란다”며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고 있으나 경계하고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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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악화일로다. <시엔엔>(CNN)은 이날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 사이에 1000명 이상 늘어난 3482명, 사망자는 65명이라고 집계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앞으로 8주 동안 50명 이상이 모이는 행사를 열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센터는 “행사들은 취약 집단 보호, 손 위생, 사회적 거리두기 관련 지침을 지킬 수 있을 때만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학교나 회사 등은 이 권고에서 제외된다.

음식점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일리노이주와 워싱턴주는 이달 말까지 모든 바와 음식점에 테이크아웃과 배달 서비스만 제공하도록 했다. 뉴욕시는 이같은 조처에 더해, 영화관과 공연장도 임시 폐장하기로 했다. 초·중·고교 휴교령을 내린 주는 하루 사이에 두 배로 뛴 33개 주(학생 3250만명)로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생필품 사재기에 대해 “공급망은 튼튼하게 유지될 것”이라며 “누구도 생필품을 비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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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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