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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국제일반

여군 “적은 아군 남자였다”

등록 :2014-10-31 18:37수정 :2014-11-03 10:11

남성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자살한 오아무개 대위의 안장식과 하관식이 열린 4월8일 오후 대전 유성구 대전현충원에서 오 대위의 어머니가 동료 여군을 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대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남성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자살한 오아무개 대위의 안장식과 하관식이 열린 4월8일 오후 대전 유성구 대전현충원에서 오 대위의 어머니가 동료 여군을 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대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33) 여군의 신화와 현실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용감한 쿠르드 여전사…이슬람국가(IS)에 자살폭탄 맞서’ ‘노르웨이 2016년부터 여성 징병제 실시’ ‘현역 육군 중령 부하 여군 성폭행 혐의 구속’ ‘잠수함에도 여군 탄다. 이르면 2017년부터’ ‘여군 1만명 시대에 산부인과 군의관은 전원 남자’….

요즘 우리 언론이 여군한테 부쩍 눈길을 주는 모양이다. 10월 들어서는 신문과 방송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사가 거의 날마다 여군 뉴스를 퍼 날랐다. 여군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여군 성학대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이 10월에만 터진 것도 아닐 텐데, 무슨 유행인가 싶기도 하다. 여군에 대한 관심이야 굳이 나무랄 일도 아니지만, 심사가 좀 복잡하다. 어제는 여군 성학대 문제를 애처롭게 다루며 핏대를 올리더니 오늘은 은근히 여군을 내세워 군사주의를 부추기는 언론사들 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동정심과 군사주의, 이런 건 여군을 대하는 본질이 아닐뿐더러 그 둘은 상극이기도 하다.

이슈타르에서 녹주부인까지

그러고 보니 우리 언론사들이 여군을 아주 ‘귀하게’ 다뤄 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군 이야기만 떴다 하면 눈을 부라린 채 지면과 화면으로 대접해 왔다. 여군이면 가십거리도 곧잘 뉴스로 둔갑했다. 그사이 여군은 조건 없이 예쁜 얼굴 잘빠진 몸매여야 한다는 게 언론사들 선택이었다. 여군, 즉 돈 되는 상품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언론사들은 여군 성학대를 놓고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어느 틈엔가 비키니 입고 총 든 금발 여군 사진을 떡하니 올릴 만큼 간도 커졌다. 요즘 우리 언론사들 인터넷판을 한번 보시라. 예컨대 10월10일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당한 육군 17사단장 뉴스판이다. <동아일보> 10월10일치 ‘육군 현역 17사단장 긴급체포, 성추행 피해 여군 위로해준다며 껴안고…’, <서울신문> 10월11일치 ‘육군 현역 사단장 긴급체포, 17사단장 집무실서 여군 성추행 행위 보니 경악’, <한국경제티브이> 10월12일치 ‘성추행으로 징역 6개월 수감 사례 보고도… 육군 17사단장 긴급체포’ 같은 기사들은 머리, 꼬리, 옆구리 할 것 없이 모조리 벌거벗은 여성 사진들에 포위당했다. <조선일보> 10월10일치 ‘육군 현역 17사단장 긴급체포, 부하 여군 성추행 혐의… 군 기강 비상’이란 기사 옆구리에는 ‘우리는 누구보다 강한 대한민국 특전사’란 사진에다가 ‘탄성 자아내는 허벅지’란 제목을 단 여성 연예인 사진을 붙여놓았다. 어쩌자는 건가?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이게 여군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비난해 온 대한민국 언론사들 얼굴이다.

하기야 남근중심주의 역사관을 바탕에 깐 신화나 전설에서도 어김없이 여전사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여군은 꽤 오래된 상품이 아닌가 싶다.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야슈타르), 이집트의 아누케트, 힌두의 두르가, 아즈텍의 이츠파파로틀, 아마존의 펜테실레이아 같은 이들이 신화 속 여전사라면 삼한을 정벌했다는 일본판 진구황후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거들었다는 녹주부인은 전설 속 여전사들이다. 역사시대로 넘어와서도 7세기 중동의 카울라 빈트 알아즈와르, 10세기 키예프의 올가, 11세기 고려의 설죽화, 13세기 몽골의 쿠툴룬, 15세기 프랑스의 잔 다르크, 16세기 타이의 수리요타이 같은 구국 여전사들이 대를 이었다. 20세기로 넘어오면 영국 식민지배에 맞섰던 가나의 야아 아산테와아, 농지를 요구하며 브라질 정부군에 맞섰던 15살 소녀 마리아 로자,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에 참여해 조선의용대 부녀대 대장을 지낸 이화림처럼 해방혁명전쟁에 앞장섰던 여전사들이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발틱지역에서는 1980년대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90년대 체첸전쟁에 이어 올해 우크라이나 분쟁에서도 흰옷 입은 여성 저격수가 러시아군을 쏘아 죽였다는 화이트 타이츠 같은 현대판 전설도 나돈다.

시대와 장소 가림 없이 등장하는 이 여전사들 이야기는 모두 정사를 벗어나 부풀려졌고 거의 모두가 남장을 한 채 적을 무찔렀다는 극적 공통점을 지녔다. 이건 인류사에서 전쟁은 모조리 남자의 일이었다는 증거다. 그 남자들의 사업에는 초월적인 힘이 필요했고, 그 남자들은 숭배 대상인 어머니를 투영시킨 여전사라는 상품을 만들어냈던 셈이다.

역사 속의 여전사들 이야기
대부분 정사 벗어나 부풀려져
전쟁은 남자의 일이었다는 증거
그 일엔 초월적 힘이 필요했고
숭배 대상인 어머니를 투영시켜

노르웨이를 한국과 비교하며
여성징병제 언급하는 건 어색
노르웨이 양성평등 지수 3위
117위 국가 한국이 흉내내는 건
여성박해이자 집단자해 행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군들이 성폭행 범죄에 노출돼 있다. 징병제 실시로 전체 군인 중에서 33%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여군의 모습. AP 연합뉴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군들이 성폭행 범죄에 노출돼 있다. 징병제 실시로 전체 군인 중에서 33%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여군의 모습. AP 연합뉴스

성폭행 경험 밝히고 장군 된 경우 없어

이제 현실 속의 여군을 보자. ‘2012년 현역 여군 1만2100명이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험’ ‘퇴역 여군 37%가 두 차례 이상 성폭행 경험’ ‘퇴역 여군 14%가 집단 성폭행 경험’ ‘성폭행 피해를 보고한 여군 15% 미만’ ‘여군 79%가 성학대 경험’ ‘성폭행 가해자 40%가 상급 장교’ ‘성폭행 피해 고발자 62%가 보복 경험’ ‘성폭행 가해자로 고발당한 군인 80%가 명예제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참전 여군 4만8100명이 성적 외상 고통 호소’….

이게 우리 군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어 온 미국 군대의 여군 현실이다. 미국 국방부 2011년 통계에는 140만 미군 가운데 여군이 14.5%인 20만3천명으로 나와 있다. 장군 697명 가운데 7.1%인 69명과 장교 16.6%인 3만6천명이 여군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여군의 전투 참여를 금지해 왔지만 2012년까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여군은 전사자 100명과 부상자 900명을 냈다. 이건 미국 군사 체계에서 이미 중대한 역할을 떠맡은 여군이 성적으로는 여전히 피해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여군들이 “적은 (아군) 남자였다”고 입을 모았을까.

지난 4월 말 미국 국방부는 2013년 성폭행과 성학대가 1년 전보다 50% 늘었다고 밝히면서 성범죄 5061건 가운데 484건을 재판에 부쳐 376건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재판 회부도 유죄 판결도 모두 10%가 채 되지 않는다. 미국 국방부는 85% 웃도는 성폭행 범죄가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 국방부 2012년 비밀조사보고서는 성범죄가 2만6천건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고 그 가운데 보고된 사례가 3374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5년 동안 미국 군대 안에서 성범죄에 노출된 군인만도 남녀를 통틀어 5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군대만 그런 것도 아니다. 1948년 독립 때부터 여군 징병제를 실시해 온 이스라엘에서는 여군 여덟 가운데 하나꼴로 성폭행과 성학대를 당해 왔다. 2014년 이스라엘 군 발표에 따르면 현역 군인 17만6500명 가운데 여군이 33%인 5만8천여명이다. 말하자면 적어도 하루에 여군 1명 이상이 성폭행이나 성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군대도 마찬가지다. 영국군의 9.5%를 차지하는 여군 1만8천여명 가운데 10%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올해 영국군 태도조사 보고서가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조금씩 차이가 날 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군들이 성폭행과 성학대를 당해 왔다. 이게 여군 현실이다.

우리 여군을 보자.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여자의용군 교육대 491명으로 출발한 우리 여군은 올 6월 말 현재 9228명으로 늘어났고 장교와 부사관의 4.7%를 차지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2년 여군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는 여군 43%가 성차별을 경험했고 11.9%는 최근 1년간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다. 올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여군 성범죄 피해가 61건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가해자가 실형을 받은 경우는 단 3건(4.92%)뿐이고 기소유예, 선고유예, 공소권 없음, 무죄가 39건(63.9%)이었다. 얼핏 보면 우리 여군의 성범죄 피해나 성학대 경험이 교범으로 여겨온 미국 여군보다 낮다. 그렇다고 한국군이 미군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 군대의 성범죄 기소와 유죄 판결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대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건 우리 여군 성범죄 피해자들이 보고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뜻이다. 지금껏 미군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 경험을 보고한 여군 가운데 장군이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여군 79%가 성학대를 경험했다는 미군에서 7.1%에 이르는 여성 장군 가운데 단 한명도 피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볼 것까진 없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군 가운데 15% 미만이 보고했을 뿐이니까. 과연 우리 여군은 어떨까?

당신들의 딸을 군대 보내고 싶은가

문제는 우리 사회다. 군대만 죽으라고 두들긴들 여군 사정이 나아질 수 없다. 군사주의 무장철학에 물든 사회가 여군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좋은 본보기가 바로 노르웨이의 여성징병제를 대하는 눈길 아닌가 싶다. 10월20일 모든 언론이 노르웨이의 여성징병제 실시계획을 마치 세계적인 흐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자 또 여기저기서 여성징병제를 들고나온 모양이다. 여성징병제는 군가산제 같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골 남성들이 빼들었던 단골 메뉴다. 노르웨이와 한국을 견줘보자. 노르웨이가 현역 2만5천명에다 예비군 4만5천명을 지녔다면 한국은 현역 64만명에 예비군 430만명을 거느렸다. 인구로 따지면 5천만명인 한국이 500만명인 노르웨이에 10배지만 군사 규모로 따지면 70배가 넘는다. 이런 노르웨이를 한국에 맞대 놓고 여성징병제를 입에 올리는 건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노르웨이를 본보기 삼아 한국의 여성징병제를 말해서 안 되는 까닭이 또 있다. 2014년 세계경제포럼(WEF)이 경제, 정치, 교육, 보건을 분야별로 조사해서 밝힌 ‘세계 성별차 보고서’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양성평등 지수가 142개국 가운데 3위였고 대한민국은 117위였다. 이처럼 여성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 여성을 모두 군대에 보내자는 건 한마디로 여성박해다. 집단자해 행위다. 우리보다 양성평등 지수에서 훨씬 앞선 영국(18위), 미국(23위), 이스라엘(53위)에서도 여군은 성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21세기 세계시민사회의 화두는 군비 축소와 무장해제를 바탕에 깐 반전운동이다. 여성의 섬세함과 전문성을 보태 군대를 현대화시키자는 입에 발린 소리도, 여성을 징집해서 군대를 키우자는 희한한 소리도 모조리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지금 우리한테 시급한 건 1만 여군을 성폭행과 성추행과 성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그래도 당신들의 딸과 누이를 모두 군대에 보내고 싶은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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