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 수도 한복판에서 암살된 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해 보복을 공언해 긴장이 커진 가운데, 러시아의 전직 국방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 안보서기가 5일(현지시각) 테헤란을 전격 방문했다.
이날 로이터 통신 등은 쇼이구 안보서기가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 및 이란 고위급 안보 관리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은 그가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을 만났다고 보도했고, 러시아 타스 통신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급 사령관이자 최고국가안보회의 서기를 맡고 있는 알리 악바르 아마디안 제독과 회담할 것이라고 전했다.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쇼이구 안보서기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는 어려운 시기 이란을 지원한 국가 중 하나임을 강조하며 “이 전략적 파트너(러시아)와의 관계 확장은 이란 외교 정책 우선순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을 포함한 특정 강대국의 일방주의적 시대는 끝났다”며 “이란과 러시아가 세계 다극 체제를 촉진하기 위해 협력함으로써 세계 안보와 평화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르나 통신은 전했다. 그는 또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행한 “범죄행위”와 하니야 암살은 “국제법과 규정 위반을 보여주는 명백한 예”라며 “이란은 전쟁 확대나 위기 고조를 의도하지 않지만 이 정권의 범죄에는 확실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현재까지 이스라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하니야 암살 사건 뒤 고조된 이란과 이스라엘의 긴장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러시아의 고위급 관료들은 하니야 죽음의 배후에 있는 이들이 중동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가라앉히고, 미국의 군사행동을 이끌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하니야 암살 사건이 발생한 뒤 이란의 보복 공격이 예고되는 중대한 시점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안보·국방을 담당하는 쇼이구 안보서기가 테헤란에 간 것을 두고 중동 관련 독립 매체인 알-모니터는 이른바 같은 ‘저항의 축’ 국가로서, 이란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짚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이란은 모두 서방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해 왔고, 이란은 전투용 드론과 탄도 미사일을 러시아에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쇼이구 안보서기는 올해 초까지 국방장관으로서 이란과의 군사 관계 심화에 관여해 왔다. 이런 그의 방문 시점은 서방의 동맹국인 요르단의 아이만 사파디 외교장관이 이란을 찾아 페제슈키안 대통령을 만나 보복 자제를 요청한 때와도 맞물린다.
쇼이구 안보서기는 모하마드 바게리 참모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의 하니야 암살을 비겁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며, 이런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지역 내 긴장을 키우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이란 현지매체 테헤란 타임스는 보도했다. 다만 타스통신은 쇼이구 안보서기의 회담 의제와 관련해 “안보와 무역 및 경제 프로젝트 등 광범위한 양자 협력 문제와 글로벌, 지역 의제의 다양한 분야가 포함될 것”이라고만 보도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