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이후 처음으로 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미국산 에프(F)-16 전투기가 자국 영토 내에서 작전 수행을 위한 비행을 시작했다고 4일(현지시각)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공군의 날을 맞아 참석한 기념행사에서 “F-16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우리가 해냈다”며 우크라이나군 휘장이 그려진 전투기 2대 앞에서 연설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또 다른 2대는 이 기념식에서 시범 운행을 선보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전투기 조종법을 익혀 나라를 위해 조종을 시작한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념행사 장소 및 전투기가 몇 대나 우크라이나에 도입됐는지 등의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F-16 전투기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가 줄곧 서방에 지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이 요구를 거부했지만,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약 29개월여만에 우크라이나의 숙원이 풀렸다.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취리허자이퉁(NZZ)은 앞서 덴마크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등은 우크라이나에 113대의 F-16 전투기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올해 도착한 양은 그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미국과 덴마크, 프랑스, 영국 등이 F-16 전투기 운용을 위해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훈련을 돕고 있는 점을 들어 이번 F-16 인도는 서방 군사 지원의 이정표가 될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군과 나토의 통합을 더욱 긴밀히 하는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크라이나는 F-16이 전황의 판세에 영향을 미칠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세대 전투기인 F-16은 다양한 유도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전투기에 탑재될 무기엔 AGM-88 함(HARM) 대레이더 유도 미사일, 장거리 합동직격탄(JDAM),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암람(AMRAAM) 등이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2년반 동안 전쟁을 치르며 우크라이나 공군의 전투기 절반 이상이 파괴돼 러시아에 열세였기 때문에, 이번 전투기 도입으로 우크라이나 영공 방어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조종사 수와 훈련 경험 부족, 전투기에 탑재한 무기 활용 범위 제한 등은 과제로 남는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F-16 전투기 일부를 외국 군사 기지에 보관할 수 있다고 밝히자, 우크라이나의 전투기를 보관하고 있는 서방 기지들도 러시아의 합법적인 군사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 전투기를 “격추시킬 것”이라며 전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격하하기도 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동부에선 도네츠크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지상군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 어린이와 보호자들을 대피시킬 것을 명령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보도했다. 그에 앞서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마을들을 계속 점령해 나가고 있다고 발표해 왔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