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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영일만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높다’며 탐사 시추 계획 승인 사실을 발표한 이후, 이번 정책 결정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굴지의 에너지기업인 우드사이드가 2023년 1월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해당 구역에서 철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의혹이 증폭됐다. (…) 이런 의문은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에 제시한 액트지오의 신뢰도 논란과 맞물려 한층 커진 상태다. 대통령 발표 당일부터 본사 주소지가 일반 주택으로 돼 있고, 연평균 매출이 3천만원 정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증 역량을 의심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 이번 탐사는 수심 1000m 안팎의 심해에서 이뤄지는 탓에 시추 한번에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성이 담보되려면 매장량이 충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어설픈 ‘깜짝’ 발표로 아직 가능성 단계인 유전 탐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걱정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 업체와 실무선에만 미뤄둘 게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제기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6월6일, 한겨레신문 사설)

빅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가 지난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빅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가 지난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Q. 유전 자문업체 액트지오의 빅토르 아브레우 대표가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직접 브리핑을 한 지 열흘이 넘었어. 그런데도 아직 시끄럽네. 국민 중 60%가 윤석열 대통령의 ‘석유 발표’를 믿지 못한대(한국갤럽 11~13일 조사)

A. 정말 제대로 분석해서 석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인지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액트지오보다 규모가 크고 전문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웨스트사이드라는 회사가 영일만 프로젝트가 사업성이 없다고 지난해 철수했는데 왜 갑자기 석유 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하냐는 거지. ‘메신저’에 대한 의심도 커. 석유공사가 1월에 이미 시추계획을 승인했다는데 넉달 뒤 갑자기 대통령이 나서서 ‘국정브리핑’을 했거든. 대통령이 워낙 인기가 없으니 국면전환을 위해 실체를 더 부풀려 발표했다는 의혹이 짙어.

Q. 윤 대통령이 브리핑하고 나니까 바로 50여년 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얘기가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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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76년 1월15일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열었어. 그런데 어떤 기자가 “포항 지구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말이 많이 퍼져 있다”라는 질문을 하니까 박 대통령이 “사실”이라고 답했어. 사실 이날 질문답변은 ‘짜고 친 고스톱’이었어. 이미 박 대통령은 언론사 사장들이나 야당 의원들에게 석유가 나온다고 사전에 알려둔 상태였거든. 박 대통령은 언론사 사장들을 불러 석유가 든 병이라며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고는 사장들한테 돌렸다지.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까지 봤대.

Q. 그러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얘기였네?

A. 오원철 당시 경제2수석비서관이 나중에 석유 소동의 전말을 밝혔는데 아주 흥미로워. 1966년부터 정부가 조사단을 구성해 시추했는데 석유가 없다는 결론을 냈대. 그런데 1975년 4월 중앙정보부에서 특별석유탐사단이 발족했어. 정보기관이 석유 탐사를 맡는 것부터 이상하지? 중정 탐사단은 곧 영일만 지하 1475m에서 시커먼 기름이 발견됐다며 링거병 몇 개에 담아왔어. 지질학자들은 지질학적으로 불가능한 곳에서 10ℓ 정도의 기름이 나왔다는 데 의구심을 가졌어. 과학기술연구원은 성분 분석만 하고는 원유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어. 중정 압력 때문이지.

오원철 수석은 처음에 대통령으로부터 석유 얘기를 듣고는 불가능하다는 직감이 와서 바로 분석에 들어갔대. 결국 그 기름은 시추 과정에서 윤활유 차원으로 투입된 경유 가능성이 높다는 잠정 결론이 나왔고 이는 대통령에게도 보고됐어. 대통령은 신직수 당시 정보부장을 불러서 원유가 아니라고 책망까지 했다는 거야.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원유가 발견됐다고 계속 쇼를 한 거지. 한창 유신정권 유지에 초조할 때였거든. 물가상승률이 20~40%대로 민생난도 심각했고. 석유 발견 소식에 전국이 흥분하면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잠시 누그러뜨릴 수 있었어. 그러다 1년도 못 가서 포항 석유 얘기는 흐지부지되고 말았어.

자료: 미국 에너지관리청
자료: 미국 에너지관리청

Q. 대단한 쇼였네. 그런데 석유 탐사라는 게 본래 간단한 일이 아니라면서? 남미 가이아나에서는 시추 시작한 지 99년 만에 유전이 터졌다던데…. 웨스트사이드가 실패했다고 해서 액트지오가 못 찾으리란 법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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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석유는 결국 시추를 해봐야 아는 거니까 실제로 동해에 석유가 있을 수 있지. 관건은 경제성이야. 전세계 많은 지역엔 석유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시추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손을 못 대는 경우가 많아. 석윳값 상승이나 시추 기술 발전으로 과거에 경제성이 없던 곳이 개발되기도 하고. 19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로 난리가 났잖아. 그때 시베리아·북해 유전이 개발됐어. 아마 동해도 시추를 계속하다 보면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올지 몰라. 이미 동해에선 가스를 생산했잖아.

2015년 5월 미국 에너지 대기업 엑손모빌이 가이아나 앞바다 스타브록에서 유전을 발견했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지. 가이아나는 1916년부터 석유 탐사를 했지만 매번 실패했었거든. 특히 스타브록은 글로벌에너지 대기업 셸이 2008년부터 엑손모빌과 공동으로 탐사를 벌이다 철수했던 곳이야. 셸이 떠나가자 엑손모빌은 간신히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등을 끌어들여 탐사를 계속했어. 그러다 1년 만에 대박이 터진 거야.

30개가 넘는 유전엔 110억배럴 이상이 매장돼 있대. 매장량 기준으론 세계 17위 규모야. 가이아나는 2019년부터 하루 65만배럴 원유를 생산하고 있고, 2017년엔 130만배럴 정도로 늘어날 거야. 카타르와 비슷한 수준이지. 남미에선 브라질에 이어 2번째 생산국이 되는 거고.

2023년 4월20일 가이아나 조지타운에 있는 엑손모빌 상설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석유시추선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3년 4월20일 가이아나 조지타운에 있는 엑손모빌 상설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석유시추선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Q. 가이아나는 엄청 부자가 됐겠네?

A. 가이아나는 인구 80만명에 열대우림밖에 없는 나라였는데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겪었지. 1인당 석유 매장량으로 보면 압도적으로 세계 1위야.

석유 생산 직전인 201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100달러였는데 2022년엔 1만8000달러가 됐어. GDP 성장률은 2022년 62%, 2023년 38%였어. 앞으로 5년 동안 예상되는 경제성장률도 20%대야. 어마어마하지.

가이아나 정부는 유전에서 발생하는 이익 50%와 매출의 2%에 해당하는 로열티도 받는대. 이런 계약조건은 엑손모빌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그래도 가이아나 입장에선 돈벼락이 아닐 수 없어. 수도 조지타운을 비롯해 곳곳에서 개발붐이 한창이야.

하지만 가이아나 국빈 대다수는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어. 어차피 석유개발로 인한 일자리는 현지인 몫이 아니고 개발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토지·건물 소유주잖아. 실업률은 여전히 2023년 기준 10%야.

Q. 오히려 불만스러운 국민들도 많겠네? 상대적 불평등도 문제잖아.

A. 정부는 석유 판 돈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해 사회기반시설 확충과 의료·교육서비스에 쓰겠다고 해. 하지만 야당은 이 돈과 사업권이 집권 여당 지지층에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가이아나 인구는 인도계(40%)와 아프리카계(29%)로 나뉘어 있어. 가이아나를 점령했던 영국이 1834년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아프리카계를 대신할 사탕수수 농장 일손을 인도에서 데리고 왔고 이후 인도 사람들은 계속 가이아나로 이주해서 다수 민족이 됐거든. 그런데 여당 지지층은 인도계이고 야당은 아프리카계야. 유전개발의 덕을 볼 만한 현지 기업 대부분을 장악한 세력이 인도계라고 하니, 아프리카계로선 불만이 많지.

또 유전 개발로 가이아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어. 환경오염 우려도 크고. 베네수엘라와의 영토분쟁도 심각해졌어. 베네수엘라는 19세기부터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에세퀴보 지역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해왔어. 여기서 석유가 나오니까 베네수엘라로선 더 욕심이 났겠지. 베네수엘라 의회는 지난 3월 에세퀴보를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주로 승인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어.

에세퀴보 영유권 분쟁은 2018년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야. 국제사법재판소는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 지역에 대한 어떤 조처도 금지한다고 했는데 베네수엘라는 이를 무시하고 있어. 중남미 사회주의의 기수로 자처하는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사이가 안 좋잖아. 자칫하면 가이아나와의 영토분쟁이 국제적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어.

Q. 산유국이 됐다고 다 좋아지는 건 아니구나.

A. 그렇지. 석유가 나오면서 부정부패가 더 심각해져서 더 만신창이가 된 나라도 있어.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석유 생산국인데도 석유 소비자 가격이 비싸서 석유 수송 파이프에서 석유를 몰래 빼내 가는 절도 행위가 심각해.

부정부패가 아니어도, 석유 생산 자체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어. 이른바 ‘네덜란드 병’이라는 건데, 에너지 자원 발견의 대표적 저주로 거론되지. 자원 수출로 많은 외화가 유입되면서 자국의 통화가치가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절상된 통화가치가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서 산업발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거지. 네덜란드에선 1959년에 북서부 그로닝겐에서 2조7400억㎥ 규모의 유럽 최대 천연가스 유전이 발견됐어. 네덜란드는 천연가스 수출로 재미를 봤지만 60년대 말부터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어. 네덜란드는 산업에서 수출과 교역 비중이 큰 나라인데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니까 불황이 닥친 거지. 네덜란드처럼 수출의존이 높은 한국에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 물론 석유가 터진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

2016년 2월 촬영된 노르웨이 북해 유전의 시추 장면. AP 연합뉴스
2016년 2월 촬영된 노르웨이 북해 유전의 시추 장면. AP 연합뉴스

Q. 석유로 좋아진 나라도 있을 거 아냐.

A. 석유 발견으로 경제가 한 단계 성숙해진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지. 미국은 텍사스 유전을 바탕으로 자동차 같은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내는 혁신을 이뤘어. 물론, 이젠 석유가 혁신경제를 창출하는 기반이 아니야.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화석 연료 기반 산업만 강화되는 건 독약이니까.

음, 노르웨이가 모범 사례겠네. 북해 유전이 발견된 뒤 ‘네덜란드 병’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대표적 나라야. 석유·가스 수출로 들어온 수입을 대부분 국부펀드에 넣고 해외투자에 주력했어. 돈이 국내로 흘러들어와서 인플레이션과 산업경쟁력 약화를 야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지. 또 막대한 유전 발견에도 불구하고, 청정에너지 개발을 주요 산업으로 채택하고 에너지 사용에서 화석연료 비중을 줄여가고 있어. 환경보호뿐 아니라 자국의 산업혁신을 이루고 있어.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1인당 소득 및 복지정책을 자랑하지. 그런데도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의 물가로도 악명 높으니 삶의 조건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석유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오히려 극약이 될 수 있어. 부자나라는 부자나라대로,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대로 딜레마를 안겨주지. 그러니 석유 시추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짓이 될 거야. 포항에서 석유가 나온다 쳐도, 다수 국민들에게 행복한 삶의 조건을 일궈 나가야 한다는 우리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아.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