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문명의 혜택은 적지만 행복감에서는 부자나라들 못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과테말라 서부 고지대 주민들. 체폴/AP 연합뉴스
물질 문명의 혜택은 적지만 행복감에서는 부자나라들 못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과테말라 서부 고지대 주민들. 체폴/AP 연합뉴스

물질 문명 혜택과 동떨어진 저소득 소규모 공동체 주민들이 부자나라 사람들 못지 않게 삶에서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통념이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 환경과학기술연구소와 캐나다 맥길대학 연구팀은 5일(현지시각)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에서 전세계 19곳의 소규모 공동체 주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 지수’가 10점 만점에 6.8점으로 아주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부자나라들의 모임으로 통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0년에 발표한 회원국의 평균치(6.7점)보다 살짝 높은 것이다. 당시 한국인의 만족 지수는 5.8점이었다.

이번 조사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의 19개 지역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주민 2966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연구팀은 “대부분의 지역은 1인당 연 소득이 1천달러(약 133만원)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추정됐으며 조사 기간에 현금 수입이 있던 이들은 전체의 64%뿐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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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1 저자인 맥길대학의 에릭 갤브레이스 박사는 “19개 공동체 가운데 4곳은 만족 지수가 8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핀란드(7.9점)보다 높은 것이다. 이들 4개 공동체는 과테말라 서부 고지대 주민들(8.6점), 브라질 아마존 주민들(8.4점), 파라과이 아맘바이 지역 주민들(8.2점), 아르헨티나 고산지대 주민들(8.0점)이었다.

과테말라 고지대 주민의 경우 전체 인터뷰 대상 70명 가운데 30명이 삶의 만족 지수가 10점 만점이라고 답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 지역 주민들의 1인당 평균 재산은 560달러(약 75만원)에 불과했다. 브라질 아마존 주민 중에서도 전체 163명 가운데 절반 가량인 80명이 자신의 삶에 전적으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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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다만 삶의 만족도가 19개 지역에서 고르게 높지는 않았다”며 짐바브웨(5.1점), 세네갈(5.2점),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오르도스 사막(5.3점) 등지의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소규모 공동체에서도 물질적 풍요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무관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재산 규모는 만족도에 있어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소규모 공동체 주민들의 행복감이 높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과거 연구들을 보면 사회적 지원, 신뢰, 자유, 가족 관계, 사회 참여, 사람·자연과의 관계 등이 행복에 중요한 요소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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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높은 수준의 주관적 복지를 얻는 데 있어서 자원 집약적인 경제 성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며 “이는 지속 가능성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희소식”이라고 평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