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백신 시범 접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 케냐 키수무에서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백신을 맞고 있다. 키수무/로이터 연합뉴스
말라리아 백신 시범 접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 케냐 키수무에서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백신을 맞고 있다. 키수무/로이터 연합뉴스

세계적 대유행 이후 신속히 백신이 개발·보급된 코로나19와 대조적으로 말라리아와 결핵 예방과 치료를 위한 노력은 부자 나라들의 무관심 속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병들이 ‘가난한 이들의 감염병’으로 치부되면서 국제적인 지원 부족 속에 살릴 수도 있는 많은 제3세계인들이 숨져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 최초로 승인한 영국 제약사 ‘지에스케이’(GSK)의 말라리아 백신 ‘모스퀴릭스’가 자금 부족 때문에 충분히 생산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이 회사는 애초 2028년까지 매년 1500만 접종분(375만명분)의 백신을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국제 자금 지원이 줄어든 탓에 2026년까지 1년 동안 몇백만 접종분밖에 생산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 회사의 애초 목표 생산량조차 세계보건기구가 필요하다고 추산한 한해 평균 1억회 접종분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어서, 아프리카 등에 대규모로 백신을 보급하려던 계획은 당분간 실현되기 어렵게 됐다. 지에스케이는 현재 시범 접종 사업을 벌이고 있는 가나·케냐·말라위 3개 나라에 우선 1000만회 접종분을 기부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아직 절반밖에 공급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2024년 초까지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백신이 보급되긴 힘들 전망이다. 지에스케이의 ‘글로벌 보건 책임자’ 토마스 브로이어는 “앞으로 5~10년 동안 백신 수요가 공급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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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희망 ‘말라리아 백신’

이 백신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어린이들의 말라리아 감염 예방률이 30% 수준으로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한해 60만명 수준에 이르는 말라리아 사망자를 줄일 거의 유일한 희망으로 평가된다. 백신 보급이 늦어지면서 아프리카에서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보면 2020년 전세계 말라리아 감염자 2억4100만명의 95%와 관련 질병 사망자 62만7000명의 96%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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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는 한해에 백신 1500만 접종분을 공급하면 말라리아 사망자를 2만명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백신 보급이 늦어지면서, 충분히 살릴 수 있던 2만명의 아이들 목숨이 위태로워졌다는 이야기다. 가나에서 이 백신의 대규모 접종 시범 사업을 이끈 보건 전문가 콰메 암폰사아치아노는 “모스퀴릭스는 새로운 백신이 나올 때까지 소중한 생명을 구할 잠재력이 있다. 우리가 더 오래 기다릴수록 살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더 많이 희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해 효과를 직접 확인한 주민들은 이런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케냐의 키수무에 사는 주민 레베카 아드히암보 콰냐는 현재 4살인 자신의 큰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말라리아 관련 질병에 계속 시달린 반면 백신을 맞은 생후 18개월 된 둘째는 말라리아로 고생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백신을 맞지 않은 큰애는 병에 걸려 고생하다 회복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백신을 맞은 작은애는 아픈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말라리아 백신 생산과 보급에 대한 국제 사회의 무관심은 부자 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신속하게 대량 확보해 보급한 것과 극도로 대비된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코로나19가 어린이들에게는 덜 위험한 반면 말라리아는 어린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다. 비영리 보건기관 ‘아르비엠(RBM) 말라리아 종식 파트너십’의 코리네 카레마 대표는 “말라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질병이다. 그래서 시장의 관심을 끌 만한 질병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1분에 한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말라리아 백신을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원 마련 방안도 불투명하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까지 백신 기금으로 33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모금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 확보한 자금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로이터>는 그동안 최대 기부자였던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에이즈·결핵·말라리아와 싸우기 위한 글로벌 기금’의 경우 추가 지원 계획이 없고, ‘세계백신면역연합’(가비)만 올해부터 2025년까지 1억5500만달러 추가 지원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지난 12일 국제 청소년의 날 행사를 위해 세네갈 다카르에 모인 아프리카 청소년들은 공개 편지를 통해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 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최근 말라리아 대응에 큰 진전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1분에 한명꼴로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현실을 걱정한다. 말라리아는 미래 가능성과 경제 잠재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더 적극적인 행동과 자금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임상시험에서 77%의 예방 효과를 보인 영국 옥스퍼드대의 새 백신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옥스퍼드대는 앞으로 1년 안에 세계보건기구의 사용 권고를 획득하는 걸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백신 제조업체인 인도의 ‘인도혈청연구소’가 이 백신을 2024년 말까지 한해 2억회 접종분 생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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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위험 더 큰 결핵은 더욱 관심 밖

2020년 한해에만 세계에서 130만명이 사망한 결핵에 대한 무관심은 말라리아보다 더 심각하다. 100년 이상 사용된 비시지(BCG) 백신보다 개선된 새 후보 물질이 15가지에 이르지만 연구·개발 자금 부족으로 새 백신이 등장하기까지 20년은 족히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결핵 진단 방법도 1882년 개발된 현미경을 통한 검사가 지금도 주로 쓰이고 있다. 세계 1500개 단체의 연합 기구인 ‘결핵 멈춤 파트너십’의 수바난드 사후 사무차장은 최근 국제 개발 전문 사이트 ‘데벡스’와 한 인터뷰에서 “결핵을 더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자동 분자 검사법이 있지만 이 검사법으로 진단을 받는 이는 세계 결핵 확진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새 치료제 개발과 보급도 더디다. 카프레오마이신 등 기존의 치료제들은 상당한 부작용이 있는데다가 모든 결핵 환자에게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한다. 사후 사무차장은 “베다퀼린, 델라마니드, 프레토마니드 같은 새 치료제들이 있지만 이런 약이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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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사망자가 코로나19 사망자와 버금갈 정도로 많은데도 이렇게 ‘구식’ 진단법, 백신, 치료제에 의존하는 것은 결핵이 ‘가난한 나라들만의 질병’이라는 편견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루치카 디치우 ‘결핵 멈춤 파트너십’ 사무총장은 결핵 문제는 돈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와 두려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결핵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만이 아니라 부자 나라 사람들의 목숨도 앗아간다는 인식만 있어도 상황은 하룻밤 사이에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핵이 공기를 통해 전파되며 모두가 결핵으로부터 보호받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며 “결핵은 코로나19와 아주 비슷하다. 진단도 치료도 받지 않고 방치되는 사람이 많으면, 걸리는 사람도 그만큼 늘게 된다”고 말했다.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말라리아보다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확산될 위험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보면, 2020년 세계 신규 결핵 환자 약 1000만명 가운데 86%가 인도·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8개 나라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세계 인구 4명에 한명꼴인 20억명이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여서 면역 기능이 저하되면 언제든지 발병할 위험 속에 살고 있다. 선진국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확산과 함께 결핵 환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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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때인 2013년 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인도 여성 언론인 난디타 벤카테산은 “결핵이 만연한 현실이 끔찍하다고 슬퍼하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행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