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디가 창립 초 썼던 마크(오른쪽), 독일 BMW와 유사하다. 바이두 갈무리
비야디가 창립 초 썼던 마크(오른쪽), 독일 BMW와 유사하다. 바이두 갈무리

지난 2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비야디(BYD) 자동차 대리점. 온종일 비가 오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서너 팀의 고객이 10여대의 전시차를 둘러봤고, 자리에 앉아 상담받는 손님이 두세 팀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판매원 마는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뒤 고객이 많이 늘었다. 지금 전기차를 계약하면 두 달 뒤에나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좁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포드자동차 대리점으로 자리를 옮겨 30분 가까이 머물렀지만 고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된 차도 넉 대밖에 없었다. 포드 대리점 판매원은 “비가 와서 손님이 더 없는 것 같다. 평소에는 그래도 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짝퉁 BMW 마크 쓰던 업체, 20년 만에 세계 3위

휴대폰 배터리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든 비야디가 불과 20년 만에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비야디는 7일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폴크스바겐을 밀어내고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세번째로 큰 회사가 됐다. 비야디는 지난해 11월에도 잠시 3위에 올랐는데, 이번엔 폴크스바겐과의 시총 격차를 400억달러(약 51조원) 가까이 내면서 안정적으로 순위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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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충칭 국제자동차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비야디의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충칭/신화 연합뉴스
25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충칭 국제자동차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비야디의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충칭/신화 연합뉴스

미국 시가총액 조사 업체 컴퍼니스마켓캡 자료를 보면, 24일 기준으로 비야디의 시가총액은 1378억달러(약 176조원)로 미국 테슬라(7636억달러, 979조원)와 일본 도요타(2191억달러, 281조원)에 이은 3위였다. 비야디 뒤로 4위부터 10위까지는 독일 폴크스바겐(987억달러, 126조원), 메르세데스-벤츠, 베엠베(BMW),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중국 창청자동차, 일본 혼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260억달러(약 33조원)와 241억달러(약 31조원)로 21위, 22위를 기록 중이다. 두 회사를 합치면, 제너럴모터스 뒤를 잇는 8위에 해당된다.

1995년 휴대폰 배터리 제조사로 시작한 비야디는 2002년 작은 지방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창립 초 독일 베엠베를 연상시키는 조잡한 마크를 쓰던 비야디는 2008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차를 내놨고, 그해 9월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의 투자를 받았다. 이듬해인 2009년 4월 중국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서울경제> 기자에게 “중국 차가 디자인과 품질 면에서 한국 차와 간극을 5년 가까이 좁혔다. 특히 비야디 같은 경우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개발에 ‘올인’해 위협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발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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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세계 4위 “배터리 회산지, 자동차 회산지 헷갈려”

비야디의 성공 비결로 꼽히는 것은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기술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공유차량 기사로 일하는 자오는 <한겨레>에 “(전기차) 디자인은 니오, 배터리는 비야디”라며 “성능만 생각하면 비야디를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비야디 판매원 마도 “우리의 장점은 배터리”라며 “전기차 세단 모델 ‘한’은 한번 충전해 650~700㎞를 운행할 수 있다. 매일 완전 충전을 기준으로 8년 뒤 배터리를 교환하면 된다. 사실상 교환이 필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비야디는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 가운데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이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비야디의 자동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중국 닝더스다이(CATL)와 한국 엘지(LG)에너지솔루션, 일본 파나소닉에 이은 세계 4위다. 비야디는 최근 경쟁자이자 세계 자동차 시총 1위 기업인 테슬라에 곧 배터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야디를 놓고 ‘자동차 기업이 배터리를 만드는지, 배터리 기업이 자동차를 만드는지 헷갈린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자동차와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면, 가격 정책을 좀 더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비야디 전기차는 중국에서 테슬라와 성능이 비슷하면서도 훨씬 싸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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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배터리를 함께 만드는 독특한 기업 특성으로 인해 지난해 자동차 판매 대수가 74만여대(신에너지차 60만대)에 불과한 비야디는 한해 600만대, 800만대씩 파는 업체를 제치고 시총 기준으로 세계 3위 자동차 기업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비야디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3월부터는 내연기관차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2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비야디 자동차 매장에 10여대의 차가 전시돼 있고, 한 고객이 서류를 보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22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비야디 자동차 매장에 10여대의 차가 전시돼 있고, 한 고객이 서류를 보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중국 전기차 3인방, 세계 12·13·18위…현대차 앞서

중국 전기차의 약진은 비야디에 그치지 않는다. 컴퍼니스마켓캡의 자료를 보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전기차만 생산하는 세계 10대 기업 중 3개가 중국 기업이다. 중국의 ‘전기차 3인방’으로 불리는 니오·리오토(리샹)·샤오펑이 각각 2위, 4위, 6위에 자리했다. 나머지 7개 중 6개는 테슬라·루시드 등 미국 회사, 1개가 영국 회사다. 전체 자동차 기업으로 보면, 니오와 리오토의 시가총액은 각각 402억달러(약 51조원), 393억달러(약 50조원)로 페라리보다 앞선 12위와 13위였다. 샤오펑은 300억달러(약 38조원)로 18위를 기록했다. 세 회사 모두 260억달러에 머문 현대차를 앞선다.

설립된 지 10년 안팎인 니오·리오토·샤오펑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비야디에 이어 중국의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육성책과 일부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가 나타나면서 전기차 업체 300여곳이 난립했지만, 지난해부터 당국이 업체 정리에 나서 상당수가 정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중국 기업들의 활약은 판매로 연결되는 중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72만대로 중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2624만대)의 10.4%에 이른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미국(3.3%)과 한국(5.9%)은 물론 전기차 보급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유럽(8.3%)보다 높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474만대)의 절반 이상(57.4%)이 중국에서 팔렸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으로, 지난해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 7980만대 중 2624만대(32.9%)가 중국에서 소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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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업체 니오 차량이 소개된 누리집. 니오 누리집 갈무리
중국 전기차업체 니오 차량이 소개된 누리집. 니오 누리집 갈무리
스마트폰처럼 중국업체 독무대 될듯

중국 전기차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된 것은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중국 정부가 과감한 육성 정책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은 심각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 구매를 권장했고, 세금과 주차번호판 발급 등에서 혜택을 줬다. 베이징시는 최근 노후차 교체 때 전기차를 사면 차량당 1만위안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자국 배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제 배터리가 탑재되지 않은 차량에 대해서는 지급을 제한한다.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국산품을 쓰자는 ‘애국주의 소비’ 열풍도 중국산 전기차의 약진에 한몫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100년 만에 발생한 전기차로의 대전환은 내연기관 제조 기술이 약한 중국에 절호의 기회가 됐다. 중국 정부는 미국·유럽·일본 등 전통적인 내연기관 강국의 자동차 기술을 단기간에 추월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키웠다. 중국은 스마트폰 등장을 계기로, ‘현금’ 결제에서 신용카드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모바일 결제 강국으로 올라선 바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기존 시스템의 부재가 거꾸로 강점이 되는 후발 주자의 이점을 누린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중국 전기차 시장이 결국 스마트폰 시장과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세계 1위 판매량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17년 말 0%대로 떨어져 의미가 없어졌다. 신에너지 관련 매체인 <클린테크니카> 보도를 보면, 지난 5월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위 20개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 중 테슬라 모델Y와 폴크스바겐 ID.4 등 2개를 제외하면 18개가 모두 중국 회사 제품이었다. 모델Y와 ID.4도 16위, 18위에 그쳤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