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리시찬스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서 박격포탄이 터지고 있다. 리시찬스크/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리시찬스크로 이어지는 도로변에서 박격포탄이 터지고 있다. 리시찬스크/AFP 연합뉴스

3일로 100일째에 이른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번째 변곡점’을 향해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계 반군이 8년 동안 쟁탈전을 벌여온 동부 돈바스의 루한스크주가 러시아군에 함락될 상황에 놓였고, 미국의 장거리 무기 제공으로 미-러는 다시 한번 살벌한 신경전을 벌였다. 4월 초 러시아군의 키이우 점령 포기, 5월 중순 도네츠크주 핵심 도시 마리우폴 점령에 이은 전쟁의 세번째 분수령이다.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은 1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주의 핵심 도시 세베로도네츠크 중심부까지 밀고 들어가 시 전체의 60%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이 도시를 손에 넣으면, 인근 도시 리시찬스크를 뺀 루한스크주 전체가 러시아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 여세를 몰아 리시찬스크마저 점령한다면, 오랜 분쟁 지역인 루한스크주 전체를 장악했다는 매우 상징성이 큰 승리를 손에 넣게 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두 도시를 공격하는 데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루한스크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를 꺼리던 M142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사거리 약 80㎞)을 포함한 무기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5월31일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무기 제공의 목적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축출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로켓으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설명했지만,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로켓 지원으로 “제3국이 개입하게 될 위험이 분명 존재한다”며 미국과 직접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도 “미국이 의도적으로 열심히 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러시아 국방부는 때맞춰 자국군이 수도 모스크바 인근에서 대규모 핵전력 기동훈련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 등에 더 이상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하지 말라며 다시 한번 핵 카드를 흔들며 경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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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지 어느새 100일에 이르렀고 그동안 전황이 여러 차례 출렁였지만, 이 전쟁이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푸틴 대통령이 번번이 서방의 예측과 다른 선택을 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2월24일 새벽 수도 키이우(북부), 돈바스(동부), 헤르손(남부) 등 세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키이우에 공수와 기갑 전력을 집중하는 등 이례적으로 빠른 작전을 전개하며 한나절 만에 수도 북쪽 경계 30㎞ 지점까지 진군했다. 이틀 뒤 키이우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호스토멜 비행장까지 장악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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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곧 바뀌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하면서 키이우 조기 점령이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제2도시 하르키우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과 보급 문제까지 겹치며 러시아군은 침공 한달 만인 3월23일에는 키이우 동쪽 25~35㎞ 지점에서 55㎞ 지점까지 밀려났다. 터키의 중재로 3월29일 이스탄불에서 이뤄진 5차 평화협상에선 “키이우 주변에서 군사작전을 줄이겠다”고 밝힌 뒤 철수 준비에 들어갔고, 이틀 뒤 이를 시행했다.

이후 핵심 전장은 마리우폴 등 돈바스로 옮겨갔다. 전쟁이 1단계인 ‘키이우 포위전’을 지나 2단계인 ‘돈바스 공방전’으로 접어든 것이다. 러시아군은 아조우해에 면한 요충지 마리우폴을 한달 가까이 포위한 끝에 3월28일 도시 대부분을 점령했다. 하지만 두달 가까이 지난 5월20일에야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끝까지 항전하던 우크라이나군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돈바스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진 듯 보이자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등은 4월 말 푸틴 대통령이 5월9일 ‘2차 세계대전 전승절’을 계기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면전을 선언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예상을 깨고 전쟁의 정당성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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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스에서 공방을 거듭하던 전황은 5월 중순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이 5월24일부터 루한스크주의 세베로도네츠크와 리시찬스크를 포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러시아군은 다른 지역에 배치된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전력을 기울인 끝에 일주일 만에 세베로도네츠크 시내에 병력을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이 도시를 완전히 손에 넣는다 해도 ‘상처뿐인 승리’에 그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지난달 31일 전황 분석 보고서에서 “모스크바가 세베로도네츠크 장악과 돈바스 전투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이뤄지고 있는 헤르손주에서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헤르손주는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나누는 큰 하천인 드니프로강 서쪽에서 러시아가 유일하게 점령 중인 요충지다. 하르키우 전선에서도 우크라이나군에 진격을 허용했다. 러시아군이 돈바스에 과도하게 집중하다 이들 지역에서 밀리면서 향후 전투에서 크게 불리해졌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을 들어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를 장악해도 전체 전황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평가를 내놨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도시를 방어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소도시 보로댠카의 한 건물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3일로 100일이 되지만,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이 재개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로댠카/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의 소도시 보로댠카의 한 건물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3일로 100일이 되지만, 이 비극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이 재개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로댠카/EPA 연합뉴스

그에 반해 최근 무리한 전투로 하급 장교 사상자가 늘며 러시아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방부는 최근 대대나 여단 규모 부대에 소속된 장교들이 후방에서 지휘하는 대신 낮은 단계의 전술작전 전면에 나서면서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분석했다. 그에 따라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주 전체를 장악한 뒤 여세를 몰아 공격 일변도의 작전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분간은 점령지 통제를 강화하며 ‘돈바스 해방’을 성과로 부각시키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사미르 퓨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선임연구원은 “키이우가 러시아군 손아귀에서 벗어난 만큼 돈바스 쟁취는 위안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나라가 지난 100일 동안 전쟁의 여러 분수령을 넘으면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향후 재개되어야 하는 평화협상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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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평화협상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영토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들은 협상 시작 조건으로 “영토 상황이 2월24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란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가 피를 흘려 점령한 지역에서 스스로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실력으로 빼앗아 와야 한다.

푸틴 대통령도 독일·프랑스(이상 5월28일)·터키(5월30일) 등 주요국 정상들과 최근 진행한 전화회담에서 평화회담이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는 데 그쳤다. 결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군사적으로 더 이상 해법이 없다고 판단될 만큼 전황이 교착 상황에 이르러야 평화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불행히도,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기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통과 희생은 더 이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까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3일까지 러시아군이 점렴한 지역을 뺀 나머지 지역에서 숨진 민간인이 어린이 232명을 포함해 4600명,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마리우폴에서 6천~2만2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러시아군 점령지에서 발생한 희생자를 모두 더하면 민간인 사망자는 최대 2만7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군인 전사자는 두 나라 모두 자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보기관 추정치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4월까지 5500~1만1천명 수준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전사자가 2만3천명 이상이라고 주장한다.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러시아 독립 언론 <메디아조나>가 러시아 쪽 공개 자료를 통해 집계한 결과를 보면, 러시아군 사망자는 최소 3050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보다 10배가량 많은 최대 3만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전사자까지 포함하면 러시아 쪽 전사자는 5550~3만2500명 수준일 것으로 집계된다.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 국경 밖으로 빠져나간 국외 난민은 지난달 29일 현재 680만명, 국내 피란민은 7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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