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5일 한국에 온 레베카 곰버츠 ‘파도 위 여성들’ 설립자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 세계적 연대로 만들어가는 성/재생산건강과 권리’ 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8년 7월5일 한국에 온 레베카 곰버츠 ‘파도 위 여성들’ 설립자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 세계적 연대로 만들어가는 성/재생산건강과 권리’ 토론회에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임신중지 권리가 제한된 국가 여성들을 위해 공해상 선박에서 약을 처방해온 네덜란드 의사 레베카 곰퍼츠(55) ‘에이드액세스’ 대표는 24주까지 미국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1973년) 판결의 변경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앞으로도 미국에 계속 약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자발적으로 임신을 멈추는 ‘임신중지권’을 처음으로 사회적 의제로 내세운 활동가인 곰퍼츠 대표는 17일 <아에프페>(AFP) 통신 인터뷰에서 5월 초 미 언론 <폴리티코>의 보도로 여성들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의중이 새어나기 전부터 미국 여성들로부터 임신중지 약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면서 미 연방정부가 여성들의 권리를 인정해 오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될 것”이지만 지금처럼 미국에 계속 약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동으로 “(우리 중) 몇몇은 이미 패닉에 빠졌고, 미국 여성들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에이드액세스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선 태아가 24주 정도가 될 때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는데도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년2개월 동안 4만5천건 이상의 약 요청이 이뤄졌다. 미국 여성들이 약을 요청하며 밝힌 사유는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의 높은 비용 △병원과의 거리 △직장과 육아로 인한 시간 부족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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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퍼츠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임신중지권이 크게 제한되면 상당수 미국 여성들이 “강제로 출산하게 될 수 있고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극단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임신부 사망자 수나 질병률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금속 옷걸이’를 상징물로 내걸고 있는데 이는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시기 은밀하게 사용돼 왔던 매우 위험한 임신중지 도구를 상징한다. <아에프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미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오는 6월 공식화되면 미국 상당수 주에서 임신중지가 금지되거나 심각하게 제한될 분위기라고 전망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2020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혔던 곰퍼츠는 1998년 시민단체 ‘파도 위 여성들’을 만들어 전세계 여성의 임신중지 접근권 확대를 위해 싸워왔다. 그는 특정 국가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공해에 ‘임신중지 선박’을 띄워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증한 안전한 임신중지 약(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처방하는 저항 방식을 고안한 인물이다. 2018년 인터넷 누리집 에이드액세스를 설립한 그는 임신중지 약을 신청하는 여성들에게 소액의 기부금을 받고 약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선 ‘파도 위 여성들’ 누리집인 ‘위민온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차단된 상태이지만 ‘에이드액세스’ 누리집엔 접속할 수 있다. 지난 3월 오픈넷 등 시민단체들은 법원에 방심위의 차단 조치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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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 미시간주 법원은 18일(현지시각) 1931년 제정돼 사실상 사문화된 미시간주 내 임신중지 금지법 시행을 중단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미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더라도, 미시간주에선 임신중지로 인해 처벌받지 않게 된다. 이 결정을 내린 엘리자베스 글리처 판사는 미시간주에서 낙태가 합법화된 지 50년이 지났다면서 “시민들이 누리는 개인의 자율권과 신체의 온전한 권리에는 여성이 주치의와 상의해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포함된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