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외교·안보 정책의 초점을 중동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힘의 공백을 중국이 적극 파고들고 있다. 특히 미군 철수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상 속에 중동 각국과 접촉면을 넓히는 등 범이슬람권을 겨냥한 중국의 외교 행보가 빨라지는 모양새다.
19일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 서부 닝샤후이족 자치구 성도 인촨에서 ‘제5차 중국-아랍권 무역박람회’가 이날 개막됐다. 지난해 인구조사 결과 닝샤의 인구는 약 720만명으로, 이 가운데 38% 가량이 무슬림이 절대다수인 후이족이다.
지난 2013년 시작된 이 박람회는 중국과 중동권 국가의 긴밀한 연계를 위해 기획된 행사다. ‘무역 경제 협력 강화와 일대일로 공동 건설’을 주제로 나흘간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1천여개 업체가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하며, 239개 업체가 현장에 전시관을 열었다. 중국은 코로나19 여파에도 지난해 유럽연합(EU)을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7개국이 참여하는 걸프협력기구(GCC)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왕이 외교부장은 올 들어서만 두차례나 순방길에 나서는 등 중동·이슬람권 국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왕 부장은 지난 3월 말엔 사우디·터키·이란 등 6개국을 순방한 데 이어, 지난달 중순에도 시리아·이집트·알제리 등 3개국을 잇따라 방문했다.
앞서 자이쥔 중국 외교부 중동특사는 지난 17일 화상으로 열린 ‘제2차 중국-중동 협력 포럼’에서 왕 부장의 중동 순방을 언급하며, “이는 국제사회의 정의를 수호하고 갈등과 긴장을 해결하기 위한 행보”라며 “앞으로 중국은 중동 각국과 협력을 심화하고, 우호의 기초를 강화하고, 함께 집단안보를 이뤄가며, 더 높은 수준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군 철수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부터는 중국 최고 지도부가 직접 대중동 외교의 전면에 나섰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에브라힘 라이시 신임 이란 대통령과 바르함 살레 이라크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를 하고, 양국 관계 발전과 지역 현안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또 왕 부장은 마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교장관(18일), 메블륫 차부쉬오울루 터키 외교장관(19일) 등과 잇따라 통화를 해 아프간 안정화 방안과 테러 근절 방안 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시 주석과 왕 부장 모두 코로나19 방역 협력과 함께 △정의·공평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 등을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대중국 정책을 비판할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