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로고가 그려진 회색 상의에 분홍색 수면바지 차림. 곱슬머리 안쪽 끝을 자줏빛으로 염색한 소녀가 11일(현지시각) 지난 6일 새벽 강진으로 깨어지고 부서진 동남부 도시 카흐라만마라시의 집을 찾았다. 지진이 난 지 닷새째였다.
열한살 뮈네뵈르는 집 안에 들어간 어머니가 건네주는 짐을 조용히 품에 안았다. 책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 옷가지, 검은색 노트북 같은 것이었다. 눈물을 보이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자신들을 담는 외신 기자들의 펜과 카메라가 어색한지 자꾸 이쪽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날은 뮈네뵈르의 가족이 마지막으로 집에 들른 날이었다. 지진이 터진 뒤 부숴지지 않은 인근 친척집에 머물던 가족은 아버지 하즈메흐멧의 여동생이 사는 차나칼레로 이주하기로 했다. ‘트로이의 목마’ 유적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튀르키예 북서쪽 끝에 위치한 차나칼레까지는 직선 거리만 약 1000㎞에 가깝다. 이스탄불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다음 한번 더 가야 한다. 긴 여행을 앞두고 뮈네뵈르의 곁을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분주히 오갔다.
짐은 간단했다. 청소기, 조리 도구, 이것저것 쑤셔넣은 가방 몇 개로 이 공간에서 살았던 가족의 삶이 요약됐다. 부엌에서 깨지지 않고 살아남은 달걀 여섯 알도 챙겼다. 어머니 세르잡은 양손에 달걀을 들고 이웃집으로 향했다. 지진 한복판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옆 건물에는 아직 사람이 산다. 뮈네뵈르가 달걀을 전하러 간 어머니의 뒤를 따라 현지에 남게 된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가족의 짐가방엔 조금 의아한 물건도 있다. 뮈네뵈르와 여섯살 동생 알리의 태블릿이다. 고요한 새벽을 강타한 지진으로 정신 없이 뛰쳐나왔다는 아이들은 짐을 찾으러 가기 전인 9일 만났을 때부터 각자의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세르잡은 “첫번째 지진이 잠시 멈췄을 때 알리가 말릴 새도 없이 집으로 뛰어들어가 본인과 누나의 태블릿을 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땅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초유의 재난 속에서 태블릿은 여섯살짜리 남자 아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챙겨야 할 물건이었던 셈이다.
부모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어린 동생의 ‘무모한 행동’은 누나가 피난생활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뮈네뵈르의 태블릿엔 한국 아이돌 ‘스트레이 키즈’의 사진이 있다. 그는 멤버 창빈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구호물품은 줄 수 없는 태블릿의 힘이었다.
헤어진 뮈네뵈르네의 안부를 묻기 위해 12일 오후 전화를 걸었다. 새로 살게 될 지역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뮈네뵈르와 알리 역시 낯선 곳에서 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이다. 열한살 소녀에게 힘이 됐던 태블릿 같은 존재가 차나칼레에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지진 이후 튀르키예에선 비슷한 피난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피해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마다 뒷좌석 가득 짐을 실은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시를 빠져 나온다. 서둘러 이사를 떠나는 듯 이불 따위를 차 위로 고정시키고 달리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뮈네뵈르 가족처럼 안전한 지역에 사는 친척 집으로 향하는 행렬이다.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에겐 호텔 같은 숙박시설이 여러 지역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