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혁명 언론에 맞서 설립됐다”는 친차베스 일간 <디아리오베아>의 기예르모 폰세 발행인의 책상 뒤에는 차베스의 큼지막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신문사 현관 벽에는 발행인이 차베스에게 받은 표창이 빼곡했다. 베네수엘라 외교부가 기자의 스케줄 제출을 요구하더니 “혁명의 성과를 보려는데 그런 곳에 방문할 필요가 없다”며 반정부 인사 면담은 취소시키고 주선한 곳이었다. 폰세 발행인은 “과거 보수 정당을 대체해 혁명을 거부하는 언론에서 우리가 차베스를 보호하고 있다”며 “보수 언론은 범죄 등 부정적 기사만 확대 보도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 현장을 안내하던 외교부 직원은 “반차베스 언론은 이런 데는 찾아오지도 않으니 당연히 보도도 안한다”고 입을 삐쭉거렸다.
반대쪽도 귀를 막기는 마찬가지였다. 반정부 일간지 <탈쿠알>의 테오도르 페트코프 편집장은 차베스를 마피아처럼 표현한 합성사진이 1면에 실린 신문을 들고는 “지난 100년간 최악의 정권이다”라며 “차베스 지지 신문은 히틀러 정권 기관지처럼 반대세력을 인신공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달엔 반차베스 일간지 <엘나시오날>의 1면에 보도된 사진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수도 카라카스의 주검 안치소에 총탄을 맞은 주검 여러 구가 방치돼 있는 끔찍한 사진이었다. 정부는 9월26일 총선을 앞둔 반차베스 언론의 공격이라고 비난했고, 반차베스 언론들은 탄압이라고 맞섰다. 2006년 차베스에 맞서 대선에 출마했던 페트코프 편집장은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도 문제냐”며, 이 논란의 사진을 16일치에 다시 게재한 <탈쿠알>을 흔들어댔다. 반차베스 인사인 호세 카라케로 시몬볼리바르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선전도구로 쓰고 있다”며 “차베스가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지만, 나 같은 비판자는 정부가 장악한 방송에 출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거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엘우니베르살> <엘나시오날> <글로보비시온> 등 반차베스 언론과 <베네솔라나 텔레비시온> 등 국영방송 및 <울티마스노티시아스> 등 친차베스 언론 사이에 여론 쟁탈전이 한창이었다. 8월13일 밤, 카라카스에서 열린 세계여자야구월드컵 경기 도중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홍콩 선수 한명이 종아리를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반차베스 신문과 방송은 이 사건으로 떠들썩했지만, 친정부 언론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차베스와 언론의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은 2002년 4월 일어났던 쿠데타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던 <라디오 카라카스 텔레비전>(RCTV)은 차베스의 거짓 사임문을 보도하고 쿠데타 주모자들과의 인터뷰를 내보냈고, 차베스는 2007년 5월 이 방송의 방송면허 갱신 불허로 이를 되갚았다. 차베스가 27시간 만에 쿠데타에서 복귀했을 때, <글로보비시온> 등 반차베스 방송은 이의 보도 대신 ‘톰과 제리’ 등을 방영했다.
조나단 몬티야 문화부 국장은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자주 나와 말을 많이 한다는데 반정부 언론들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니 직접 알리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장악’이 아니라, ‘국민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적대적 언론환경을 돌파하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페트코프 편집장은 “베네수엘라는 둘로 쪼개져 병들었고 언론도 피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타협하기 어려운 ‘총성 없는 전쟁’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를 점점 더 극단적 대립과 분열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카라카스/글·사진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