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노사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삼성그룹은 18일 삼성전자·삼성물산 명의로 네 문장으로 구성된 ‘입장문’을 내놨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결성·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전·현직 임원 다수가 17일 실형을 선고받은 데 따른 것이다. 삼성은 이 글에서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이번 일을 바탕으로 삼성이 전면 쇄신에 나설 것이란 기대를 내놓지만, 삼성전자 내부는 잇따라 불거지는 해묵은 ‘총수 리스크’ 탓에 정상 경영도 힘겨운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쇄신을 결정하고 추진할 ‘컨트롤타워’(지휘부)가 사실상 붕괴했다. 이사회부터 제대로 운영될지 불확실하다. 이상훈 이사회 의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이사회에 큰 구멍이 생겼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0월 말 임기가 끝나며 3년 만에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 등의 연임 반대를 우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사내이사로는 사업부문장인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이사 3명만 남았다. 이들은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사업 책임자로, 노사 관계 개편과 같은 전사 업무에 밝지 않고 주도권도 없다. 미봉책으로나마 이사회 의장 대행부터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이사회 운영과 관련해 아직 논의되는 사항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결이나 심의를 거치지 않은 전면 쇄신안 마련은 어렵다. 이사회는 상법상 핵심 의사결정기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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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기업 운영도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당장 정기 인사가 몇 주째 지연됐다. 삼성그룹은 2010년 이후 해마다 12월 첫째 주에 그룹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낸 뒤 차례차례 직원들 인사를 해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내부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없다”고 밝혔다. 17일 삼성전자 인사팀장인 박용기 부사장(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인사 라인은 노조 와해 사건으로 줄줄이 실형을 받았다. 현직 인사팀장인 박용기 부사장을 비롯해 인사팀 임원인 신현진 상무(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배일환 상무(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등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인사팀조차 이런 상황에서 인사가 원활히 이뤄지기는 어렵다. 또 다른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기 인사가 내년 3~5월께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인사가 늦춰진 사례도 없지 않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룹 지휘부 구실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될 당시 ‘2016년 말 정기 인사’가 해를 넘겨 2017년 5월에 이뤄진 전례가 있다.

늦춰지는 인사 탓에 사업 계획 수립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삼성전자는 사업부별로 ‘글로벌 임원회의’란 문패를 걸고 내년 사업 계획을 짜고 있다. 하지만 정기 인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계획 수립과 실행의 주체가 유동적이다. 정기 인사에서 교체될지 모를 임원이 사업 계획을 주도할 수는 없다. 휴대전화 사업부의 한 부장급 간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내년 스마트폰 사업 전략에 대한 윤곽은 나와 있지만 정작 누가 방향타를 잡고 추진할지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사업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술렁임이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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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삼성이 ‘사면초가’에 놓인 근본 원인을 ‘총수 시스템’에서 찾는다. 이병철 창업 회장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 무노조 경영 원칙은 물론, 이재용 부회장으로 그룹 승계를 위한 각종 불·편법 행위가 사법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전문 경영인들이 회사와 주주의 이해보다 총수의 뜻과 이해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제왕적 총수 시스템 속에서 치명적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삼성은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듯이 여타 그룹에 견줘 그 정도가 더 강하다”며 “(과거와 달리) 기업 규모가 매우 커진 상황에서 전문 경영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위임하는 형태로 총수 시스템을 바꿔 나가지 않으면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