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난 15년간 안정적으로 기내식을 공급하던 엘에스지셰프코리아에 계약 연장을 대가로 금호홀딩스에 1500∼2000억원가량을 투자하라고 요구한 것은,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해 그룹을 재건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금호홀딩스의 부채를 갚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회장은 지난 4일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중국 하이난그룹에서 1600억원을 투자받은 것과 게이트고메코리아로의 기내식 사업자 변경은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2015∼2017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9일 <한겨레>가 경제개혁연대의 ‘금호그룹의 계열 회사간 자금 거래 등의 적절성 검토’ 보고서(2017년 5월)와 금호홀딩스의 감사보고서, 금호그룹의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공시 등을 종합한 결과, 박 회장은 2016년 금호홀딩스의 유동성 위기를 풀기 위해 공교롭게도 딱 1600억원이 필요했다. 앞서 박 회장은 2009년 워크아웃된 금호산업을 되찾기 위해 2015년 10월 금호기업을 만들었다. 금호기업은 설립 두달 뒤 금호산업 주식 46.57%를 산업은행으로부터 인수했고, 이때 총 6728억원이 들어갔다. 박 회장은 이 가운데 3300억원을 엔에이치(NH)투자증권에서 빌렸고, 나머지는 본인 및 특수관계인과 기타 우호세력 등의 출자와 그룹 산하 공익재단의 자회사 출자 등을 통해 조달했다.
당시 박 회장으로서는 엔에이치투자증권 대출금 3300억원을 서둘러 상환해야 했다. 금호산업 지분 46.54%가 담보로 잡혔고, 대출 금리가 5.5%로 높아 연 이자비용이 180억원에 달했다. 대출기간도 1년 6개월으로 짧았다. 제때 상환하지 못하면 그룹 재건 다음 단계인 금호타이어 인수전에 나서기는커녕 그룹 지배권이 흔들릴 상황이었다.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 합병으로 출범한 금호홀딩스(지주회사)는 2016년 3300억원을 전액 상환하는 데는 성공했다. 대신증권에서 5% 금리로 800억원을 차입했고, 케이프투자증권에서 6.5∼6.75% 금리로 900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1600억원이 더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금호홀딩스가 엘에스지 쪽에 1500∼2000억원 투자를 요구한 때와 시기가 겹친다. 그러나 엘에스지의 모회사인 독일 루프트한자그룹 쪽이 “직접 거래 대상인 아시아나항공에 투자를 하겠다”며 홀딩스에 대한 투자를 거부하면서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호홀딩스는 2016년 4분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아이디티(IDT) 등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6곳으로부터 966억원을 단기로 대여하는 등 추가 자금 조달에 나섰다.
이후 금호홀딩스는 중국 하이난그룹과 손을 잡았다. 2016년 12월 박삼구 회장과 아담 탄 하이난그룹 최고경영자가 서울에서 만났다고 직후 아시아나항공은 하이난그룹이 한국지사로 설립한 기내식 업체 게이트고메코리아 지분 40%를 취득했다. 그리고 석달 뒤인 2017년 3월 하이난그룹은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 1600억원어치를 20년 만기에 액면 이율 0% 조건으로 인수했다. 이어 금호홀딩스는 자회사에서 빌린 대여금 상환을 마쳤다. 경제개혁연대는 보고서에서 “금호홀딩스는 2017년 3월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으로 유입된 자금으로 대여금을 상환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총수의 빚을 갚기 위한 투자금 유치, 무리한 기내식 사업자 변경, 투자금 유치 계획 차질에 따른 자회사에서 급전 대여, 하이난그룹 투자액(1600억원)을 활용한 자회사 대여금 상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숨가쁘게 이뤄진 꼴이다.
한편, 금호홀딩스가 자회사 7곳으로부터 2016년 4분기에 빌린 966억원은 각 회사 순자산의 12.64∼39.13%에 이른다. 금리는 2∼3.7%로 낮게 책정됐다. 경제개혁연대는 “공정거래법상의 특수관계인 부당지원 가능성이 있는 데다, 각 자회사들은 이사회 의결이나 공시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공정위에 지난해 6월 조사를 요구했다. 공정위는 올 초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현장조사 등을 벌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공정위가 조사중인 사안이라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